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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4) 찰리 채플린, 헝가리 축구를 만나다 - 그 시절 축구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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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비슷한 헝가리의 정서


동유럽의 나라, 헝가리는 우리에게 생소한 곳입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헝가리와 우리 나라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합니다. 2013년 렌젤 미클로시 주한 헝가리 대사가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에는 이런 점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헝가리의 조상은 2,000년 전 우랄 산맥 근처에서 이주해 왔고, 우리나라와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두 나라 언어에는 비슷한 점이 많은데, 헝가리어로 “아버지”는 “어버지”이고, “아빠”는 “어빠”입니다. 단어뿐 아니라 어순도 비슷하고,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다음에 쓴다든지, 날짜를 말할 때 연월일 순서로 말하는 것도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역사나 사회 면에서는 어떨까요? 사실 헝가리도 오스트리아, 독일, 소련과 같은 유럽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 왔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국토가 피폐화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역사와도 통하는 면이 있네요. 그리고 이렇게 전쟁으로 어려웠던 시기의 헝가리 축구를 그린 영화가 있습니다. 국내엔 소개된 적이 전혀 없는 영화여서, 우리말 이름이 따로 없습니다. 영어 제목은 “Football of the good old days”네요. 제가 의역해서 <그 시절 축구(Regi id?k focija)>라고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1924년, 1부 리그 진입을 노리는 헝가리 축구팀

1924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이 동유럽의 보석과 같은 도시는 이미 1차 세계대전과 경제난으로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미나릭(Minarik)은 세탁소 주인이자, 지역 축구 클럽인 차바굥게 SC(Csabagyongye SC)의 운영자입니다.

1부 리그 진출을 노리는 차바굥게 팀. 이 곳에는 다양한 동네 청년들이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바람둥이 골키퍼는 자신에게 사랑에 빠진 소녀로부터 도시락을 얻어먹으면서도 당당합니다. 어떤 선수가 이웃 독일의 히틀러의 이름을 외치면서 극우주의를 찬양하면, 다른 선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입에 담으며 공산주의를 외치죠. 그냥 동네에서 공을 차다가 스카우트된 소년도 있습니다. 순회 서커스 단에서 탈출한 집시 청년도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이들이지만 축구의 이름 하에 하나가 되어 있죠.

그러나 전후 헝가리의 경제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빈부격차는 커집니다. 부다페스트의 서민들은 빵 한 조각으로 간신히 배를 채우지만, 부유층들은 매일 밤 클럽에서 파티와 유흥에 몰두합니다. 미나릭과 차바굥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장의 월세를 내지 못하자 땅주인은 선수들의 유니폼까지 뺏어갑니다. 팀의 해체를 막기 위해 미나릭은 한 사람씩 선수를 팔기 시작합니다. 팀의 사기는 바닥을 칩니다.

게다가 사회 혼란도 극에 달합니다. 인종주의를 외치는 청년들이 폭발물 테러를 일으키고, 미나릭은 여기에 휩쓸리지만 간신히 목숨을 구합니다.

미나릭과 차바굥게, 그리고 부다페스트의 시민들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바로리그 승격이 걸린 중요한 일전을 치르게 된 거지요. 차바굥게는 승격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미나릭은 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찰리 채플린과 무성 영화에 대한 향수

이 영화는 1973년 개봉하였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죠. 그래서일까요?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무성영화가 아님에도, 찰리 채플린으로 대표되는 1900년대 초반 무성영화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 중간중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자막이 등장합니다.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배우들은 과장되고 불연속적인 동작을 반복하죠. 게다가 주인공 미나릭의 생김새도 찰리 채플린과 비슷합니다. 영화 중간에는 찰리 채플린 전시관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감독이 찰리 채플린 영화를 의식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찰리 채플린 스타일로 만들어진 헝가리 축구 영화라! 이렇게 독특한 작품도 있을까요?

사실 찰리 채플린 영화는 코미디 영화이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매력이 숨어 있었죠. 찰리 채플린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연기하곤 했습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런 그의 철학이 잘 들어난 작품이 바로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입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애환이 이 영화에는 잘 드러나 있죠.

이 영화, <그 시절 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축구 선수들도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라고 바보 같아 보입니다. 게다가 피아노 선율에 맞춘 그들의 과장된 동작은 찰리 채플린의 연기 그대로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1920년대 헝가리에서 어떻게든 “1부 리그 승격”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랬지만 “축구”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 또 누구나 좋아하는 스포츠이기에 대중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이기도 했죠.

그런 기대 때문일까요? 비록 헝가리는 1,2차 세계대전 모두에서 패전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적어도 헝가리 축구는 1950년대 무적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고, 올림픽에서는 무려 세 번이나 우승을 했습니다. 푸스카스(Ferenc Puskas)라는 걸출한 선수를 배출하며 “무적의 마자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비록 안타깝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스위스 월드컵 당시 헝가리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는 독일 영화<베른의 기적>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축구 강국의 자리에서 멀어진 헝가리지만, 그래도 그들이 한 때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바탕에는, <그 시절 축구>에 나타난 평범한 헝가리 사람들의 기대와 애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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