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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교수감독' 김남기의 명지대 실험① - 대학스포츠,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농구가 최근 딜레마에 빠졌다. 2012년 불거진 '스카웃 비리 파동'은 뜻하지 않게 전력 양극화 현상을 낳았고, 설상가상으로 '외국선수 출전 확대'를 골자로 한 KBL발 역풍까지 덮쳤다. 그렇잖아도 뒤숭숭한 농구계다. '프로농구의 젖줄'인 대학농구의 위기 역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와중에 '첫 국가대표 전임감독' 김남기 명지대 감독(55)이 대학스포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 화제다. <헤럴드스포츠>가 '연구하는 지도자'로 유명한 김 감독을 만나 한국농구가 가야할 길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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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감독 + 선수단 전원 공개모집', 명지대 김남기 감독(55)의 실험이 흥미롭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농구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전통의 강호인 연·고대에 중앙대, 경희대가 맞서는 형국이었지만 어느 하나 승리를 장담할 순 없었다. 한양대, 성균관대, 명지대를 비롯해 이른바 ‘삼국대’로 꼽히는 건국대, 동국대, 단국대 등 무시할 수 없는 다크호스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젠 다 옛말이 됐다. 요즘 대학농구엔 ‘명문대 쏠림 현상’이 심하다. 3년 전 대학 운동부가 ‘스카우트 비리’로 크게 홍역을 치르면서 판이 위축됐다. 자연스레 고교 유망주들은 학교 서열에 따라 ‘분배’되기 시작했다. 현재 대학리그는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3강’과 ‘나머지’의 판도다. 조금 더 정밀하게 분석하면 맹주 고려대를 연세대와 경희대가 조금 격차를 두고 추격한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대학은 추격도 못한다. 이번 광주 U대회 대표팀만 봐도 엔트리 12명 중 9명이 ‘3강’출신이다(고려대 4명, 연세대 3명, 경희대 2명-프로선수 포함).

지난 주 끝난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에서 연세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고려대는 대학리그 전반기 4위 동국대를 예선 1차전에서 63-94로 대파했다. 준결승에서 만난 명지대에도 91-66, 25점차로 대승했다. 물론 4강 대진 반대편에서는 연세대와 경희대가 맞붙었다(연세대 78-69 승). 학교 간 전력차가 벌어지면 대학리그의 흥미가 반감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현장 지도자들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예전처럼 고교 유망주들을 데려오기 위한 ‘물밑 작업’은 쉽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마냥 훈련을 통해 전력차를 극복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대학 운동부의 위상은 이미 추락한 지 오래다. 사회적으로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학교가 긴축 재정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예산 삭감의 칼끝을 겨누는 곳도 운동부다.

명지대와 김남기의 의미있는 실험, 엘리트 운동부도 이젠 바뀌어야

이 와중에 명지대 김남기 감독(55)의 실험이 흥미롭다. 지난해 3월 명지대 농구부 감독으로 부임한 김남기 감독은 국내 엘리트 운동부 지도자 중 최초로 전임교수(체육학부)에 임명됐다. 다소 이색적인 ‘교수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유병진 총장(63)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유 총장은 10여년 간 대학축구연맹 회장을 지내고 현재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국제대학스포츠연맹 위원을 맡고 있는 대학스포츠 전문가다. 이번 광주 U-대회에도 한국 선수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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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유병진 총장(63).

2012년부터 대학 운동부에 입시비리 스캔들이 불거지자 유 총장은 고심 끝에 ‘선수 전원 공개선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원자들을 모집, 외부 인사를 포함한 6명의 선발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테스트를 거쳐 선수를 선발하기로 한 것이다. 2006년 조선대가 공개모집을 통해 선수 2명을 스카웃한 적은 있지만 별도의 선발위원회를 꾸려 선수단 전원을 공개선발한 건 명지대 농구부가 처음이다. 그만큼 입시비리를 근절하겠다는 유 총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위험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실력 있는 선수를 한 명이라도 더 ‘모셔’오지는 못할망정 대학이 느긋하게 선수를 기다린다니, ‘성적은 포기해야 한다’는 회의가 많았다. 유 총장은 그럴수록 ‘유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연세대 왕조’를 이끌었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거쳐 프로(오리온스 감독)까지 풍부한 지도자 경력을 갖고 있는 김남기 감독은 그렇게 마지막 퍼즐이 됐다.

애초에 당장의 성적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험이었다. 유 총장은 지도자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선수들을 키워낼 수 있도록 김 감독을 교수직에 임명해 안정적인 여건을 보장키로 했다. 연세대 신방과(학사)를 졸업한 김 감독은 “석,박사학위 없는 교수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어 “임기를 보장받은 만큼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학생들과 소통하며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는 게 ‘교수 감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매 학기 명지대 농구부를 이끎과 동시에 체육학부 교수로서 일반 학생들이 수강하는 <전문실기>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좋은 농구 가르치면 좋은 선수 찾아올 것"

김 감독은 “대학리그의 전력 평준화를 위해서는 결국 선수들 사이에서 학교 이름보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키워줄 수 있는 지도자를 보고 학교를 선택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 명지대가 첫 주자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공개선발을 통해 선발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2-3년 후에 명지대는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리그 일정을 소화하며 학교 수업까지 신경써야 하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고등학교 유망주들을 파악하는 일에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이유다.

‘물건’을 발견해도 직접 스카우트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가능성이 있으니 명지대 공개 테스트에 지원해 봐라’고 코멘트를 해주는 게 전부다. 김 감독 역시 6명의 선발위원 중 한 명일 뿐이라, 100% 선발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잖은 고교 유망주들이 기꺼이 명지대에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만큼 김 감독의 지도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 감독은 “작년 1월 (명지대로부터)처음 제안이 왔을 때 솔직히 나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공정한 선발 시스템에 대한 총장의 의지, 당장의 성적보다도 선수들이 대학에서 그야말로 ‘좋은 교육’을 받길 바라는 교육적 비전에 공감이 갔다. 반대의견도 많았지만, (공개선발은)멀리 본다면 비리를 없애는 가장 좋은 제도다. 결국 좋은 농구를 가르치면 좋은 선수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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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개선발 시스템을 거쳐 명지대에 입학한 표경도(196cm F)는 향후 팀을 이끌 재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진=명지대 서포터즈 노혜선]

김 감독의 믿음은 괜한 공염불이 아니다. 명지대는 이번 MBC배에서 ‘9년 만의 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주목받는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김남기 특유의 ‘조직적인 농구’가 팀에 녹아든 결과다. 현재 신입생 표경도(196cm 포워드), 우동현(174cm 가드) 등이 공개 선발 시스템을 통해 뽑힌 선수들이다. 표경도는 지난주 고려대와의 4강전에서 비록 패하긴 했지만 1학년답지 않은 과감한 플레이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계속 성장 중인 명지대는 현재 9위에 머물러 있는 대학리그에서도 이달 말 시작되는 후반기부터 반전을 노리겠다는 각오다. [헤럴드스포츠=나혜인 기자 @nahye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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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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