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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측담장의 편파야구 V3는 백신이 아닙니다] '롯데 1군'을 향한 10년의 기다림
"스타의 기질이 느껴지는 선수입니다."

2007년 6월 16일로 시계를 돌려보자. 한화 이글스에 5-6으로 뒤진 롯데 자이언츠의 9회 마지막 공격. 2사 후 1·2루 찬스에서 강병철 감독의 선택은 대타였다. 대타로 선택된 선수는 당시 대타 타율 0.444(9타수 4안타)로 쏠쏠했던 선수였다. 그리고 그 젊은 대타는 철벽 마무리였던 구대성을 상대로 볼카운트 2B 2S까지 승부를 끌고 갔다. 2년차 선수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 여유였다.

그리고 5구. 핀치히터는 구대성의 141km/h의 빠른공을 받아쳐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타구를 만들어낸다. 2루주자 강민호와 1루주자 김주찬은 모두 홈을 밟았고 그는 2루에 들어갔다. 방긋 웃는 그의 표정과 승리를 날린 선발투수 정민철,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구대성의 표정이 절묘하게 오버랩됐다.

그 타구 직후, 중계를 맡았던 MBC스포츠플러스 한명재 캐스터는 "스타의 기질이 느껴지는 선수입니다!"라며 그 대타를 칭찬했다. 그 선수가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버스를 타고 경기하러 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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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롯데 자이언츠 주임 손경구 씨(오른쪽)와 그의 아들


손경구 씨는 1979년, 롯데제과의 운전직 사원으로 입사한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1990년 6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팀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손경구 씨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야구를 원체 좋아하던 그 꼬마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가는 게 낙이었다. 무더웠던 1991년 여름, 당시 롯데 2군의 임태호 감독은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하염없이 구경하던 그 꼬마아이에게 글러브를 끼워줬다. 그리고 직접 배트로 공을 쳐주는 등 함께 장난을 쳤다. 그런데 5살에 불과했던 녀석이 야구공을 곧잘 받아냈다. 이 광경을 구경하던 선수들은 '천재'라며 그 꼬마아이에게 비행기를 태웠다.

그리고 1992년, 롯데는 염종석이라는 불세출의 투수를 앞세워 창단 두 번째(현재까지 마지막) 우승에 성공한다. 선수단과 구단 직원 전체가 함께한 야유회 자리, 임태호 2군 감독과 함께 연습하던 그 꼬마아이가 화제에 오른다. 당시 최고의 내야수였던 박정태만의 독특한 '흔들흔들' 타격폼부터 김민호의 방망이를 가만두지 않는 준비자세까지. 그 꼬마는 롯데 주전타자 대부분의 타격 자세를 완벽히 흉내냈다. 참석했던 모두가 야유회장이 떠나가라 웃었다. 많은 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을 췄지만 장기자랑 1등은 그 꼬마아이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상으로 야구 글러브를 받는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길로 롯데 마린스 리틀야구단에 가입한 그 아이는 부산중학교-부산고등학교를 거쳐 롯데에 입단한다. 아마추어 시절 투수와 내야수로 활약했던 그는 입단 당시 장타력과 수비력을 겸비한 멀티 내야수로 주목 받았다. 아무 것도 모르던 꼬마아이의 놀이터였던 사직구장은 이제 그의 직장이 된 셈이다. 아버지 손경구 씨는 "다섯 살 코흘리개로 박정태의 타격 폼을 따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1군 선수가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라며 감격했다.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들의 꿈은 하나였다. 바로 아버지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경기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손경구 씨는 롯데 구단 버스 운전기사였다. 그의 꿈은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첫 목표를 달성한 그는 "당당한 1군 선수가 되면 꿈이 완전히 이뤄질 것이다. 맡는 포지션에서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손경구 씨의 꿈은 '아들이 1군에서 꾸준히 나서는 것과 우승에 성공한 선수단을 부산에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들은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롯데의 우승은 요원했다. 결국 그는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정년퇴임했다. 그리고 개인택시를 운전하던 7월, 손 씨에게 선물이 하나 도착한다. 최신형 자동차였다. 아들의 선물이었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들이 보낸 선물. 그는 "차를 선물받은 날이 내 인생 최고로 기쁜날이었다"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저도 2015년의 제가 너무 기대됩니다"

양승호 감독이 팀을 이끌던 2011~2012시즌. 아들은 매년 40경기 이상 출전하며 타율 0.260 이상을 기록했다. 주로 경기 후반 대수비, 대타로 나서며 쏠쏠한 활약을 했다. 그 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김시진 감독이 부임한 지난 2년, 단 여섯 번 1군 경기에 나섰다. 타석 수는 2년 합쳐 10개가 고작이었다. 힘든 시기였다. 공익근무요원 복무 이후 가장 외로웠을 순간. 그러나 그는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내가 부족해서 퓨처스 팀에 머문 것"이라며 자책한 그는 "이제 야구를 잘할 때가 됐다.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일 차례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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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스가!!' 맹훈련 중인 롯데 손용석


개막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다른 선수 인터뷰를 위해 사직구장을 찾았는데 훈련을 마친 그의 표정이 너무도 밝아보였다. 몸 상태가 좋아보인다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저도 2015년의 제가 너무 기대됩니다." 그 후 그를 주목했다. 그리고 그는 올 시즌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지난주부터 꾸준히 주전 1루수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 구대성에게 역전 적시타를 친 선수, 손경구 씨의 아들 모두 올 시즌 롯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손용석이다. 이번 시즌 6경기 출장해 타율 0.400(20타수 8안타)을 기록 중인 손용석. 지난 21일 잠실 두산전에서 유희관의 퍼펙트게임 행진을 막은 것도 손용석이었다. 손용석이 안타를 때린 5회 2사까지 유희관은 단 하나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만일 손용석의 안타가 없었다면 경기가 끝났을 때 유희관의 기록지가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손용석은 언제나 "방망이는 자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수비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그는 7시즌 152경기 447.1이닝에서 단 하나의 실책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표본은 작지만 1군에서 큰 실수 없이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 응원가도 생겼다. 이제 롯데 선수들 앞에서 재간을 피우며 웃음을 유발했던 6살 꼬마는 팬들에게 사랑받을 준비를 끝냈다. 2007년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때려냈을 때 한명재 캐스터의 말처럼, 그는 스타의 기질이 느껴지는 선수다. 그리고 팬들은 조금씩 응답하고 있다.

기자는 시즌을 앞두고 '몸짓에 지나지 않은 롯데 손용석. 꽃이 될 수 있을까?'라는 기사를 썼었다. 사직구장에서 만난 그의 표정과 자신감 섞인 말투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즌 중반까지 손용석은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지금, 손용석은 조금씩 완생이 되어가고 있다. 팬들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팬들에게로 와서 꽃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첫 날갯짓이 시작됐다.

*좌측담장: 결정적 순간. '바깥쪽' 공을 받아쳐 사직구장의 '좌측담장'을 '쭉쭉 넘어갈' 때의 짜릿함을 맛본 뒤, 야구와 롯데 자이언츠에 빠진 젊은 기자.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야구가 좋고, 그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 목표 아래 매일 저녁 6시반 야구와 함께 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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