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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바카라로 본 체육계 상습도박
#19세기 말 프랑스 사업가 로깡땡은 프로 도박사 세 사람과 독일 바덴바덴의 카지노에 갔다. 세 사람은 블랙잭을 해 큰돈을 땄고, 파산한 카지노는 다른 경영자에게 넘어갔다. 새 카지노 주인은 독일의 수학자들을 불러 모아, 그 누구도 카지노를 상대로 이길 수 없으면서도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게임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이 새 게임은 다시 찾은 로깡땡 일행을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이 게임이 바로 바카라(baccara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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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꽃'으로 불리는 바카라 게임 장면.

#자못 심오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바카라의 기원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전설적인 승률로 유명한 진 킴의 <카지노시크릿>(2008년) 등 몇몇 도박 서적에 소개돼 있고, 인터넷을 떠돌고 있지만 근거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로깡땡이라는 이름이 실존주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창작된 느낌이 한층 짙다. 오히려 도박학(學)으로 유명한 UNLV(라스베이거스주립대)가 2010년 5월 펴낸
등 믿을 만한 자료들은 바카라가 중세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 카지노게임으로 정착됐다고 설명한다. 바카라는 이탈리아어(baccara)로 ‘제로’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카지노 창조설’이 나올 정도로 바카라는 카지노 게임 중 가장 중독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도박의 꽃’, ‘악마의 게임’ 등 자극적인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성공한 인생이 노름으로 패가망신했다는 얘기는 소설뿐 아니라 우리네 주변, 특히 유명인사가 등장하는 술안주 얘깃거리로 쉽게 접할 수 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인 도박 사건이 대표적이다(대부분 바카라를 즐겼다고 한다). 프로 갬블러이자 프로 바둑기사로 유명한 차민수 씨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명문대 나오고 많이 배운 사람, 사회적으로 능력있는 사람이 오히려 도박 중독에 빠질 위험이 더 크다”고 일갈한 바 있다.

#도박은 사회악이다. 그런데 매춘처럼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 신이 인간을 그렇게 설계했는지도 모른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도박 중독도 뇌에서 나오는 나쁜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인생 자체가 도박이니, 무조건 도박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의 속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타짜 변호사 김태수는 <51% 게임 손자병법>(2011년)에서 “인생에서 확실한 것이 어디 있으며, 또 돈을 걸지 않고 되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우리는 늘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계속해서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도박사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도박은 금기시되고, 죄악시된다. 이 역설의 결과로 인해 우리는 삶의 수많은 선택 과정에서, 또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며 합리적 선택을 추구하는 도박의 법칙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창했다. 포커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전면적인 도박금지 주장에 대해 “도박으로 돈을 잃는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어차피 돈을 잃을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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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게임 손자병법>은 베스트셀러는 아지만, 도박과 승부에 관한 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타짜변호사로 알려진 김태수 변호사가 썼다.

#그래서일까. 도박을 허용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근절할 수 없다면 가능한 통제 가능한 범위에 두고, 또 세수 증대 등 경제적 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은 카지노가 지천이고, 토토로 불리는 스포츠도박도 성행하고 있다. 윤리적으로 엄격함을 추구하는 일본도 파친코가 국민의 오락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고, 카지노 합법화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경마 경륜 경정에 이어 체육복권사업(스포츠토토)이 뿌리를 내렸고,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확대하려고 한다. 1,000원짜리 고스톱을 쳐도 처벌 받는 나라에서 연간 불법 도박 시장이 나라 살림의 1/3인 약 100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스포츠도박도 합법(3조원)에 비해 10배 가량 많다고 하니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3년).

#개인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스타플레이어와 도박도 다사다난하다.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승부의 세계에 몸담고 있으니 도박과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도박으로 엄청난 돈을 잃었고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반성했다. 얼마나 갬블을 즐겼으면 걸어서 카지노를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완전히 도박을 끊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조던과 함께 NBA 전성기를 이끈 찰스 바클리도 스스로 도박 중독자라고 밝혔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여성편력 이전에 상습 도박으로 여러 차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갬블을 좋아하는 한국의 스포츠스타도 많다. 류현진도 스프링캠프 때 카지노 출입이 잦아 우려스럽다는 뒷말이 많았는데 결국 부상으로 올시즌을 접었고, 일본 후쿠오카의 한 파친코 영업장은 한국 농구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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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도 도박중독으로 곤욕을 치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상습 도박, 즉 개인적 일탈행위는 미국에서는 관대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처벌받을 확률이 높다. 반면 승부조작(정확히 말하면 경기조작)은 세계 어느서나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심각한 범죄다. MLB에서도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발생한 ‘블랙삭스 스캔들’이 역사의 오명으로 남아 있고, 신시내티 감독 때 스포츠 도박에 심취했던 피트 로즈는 영구제명됐다. 유럽에서는 축구도박 파문이 심심치 않게 터져나온다. 한국도 축구, 농구, 야구 등에서 경기조작 사건이 계속 터져 나왔다. 중요한 것은 상습 도박과 승부조작의 상관성이다. 평소 도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승부조작을 시도하려는 범죄자들의 사정권 밖에 있다. 하지만 상습 도박을 즐기는 경기인(감독이나 선수)은 승부조작의 추파를 쉽게 받는다.

#모 프로농구 감독의 승부조작 혐의로 농구계는 물론, 나라가 시끄럽다. 당사자가 ‘빨리 수사를 해 달라’고 경찰서를 항의 방문을 할 정도이니, 공명심에 눈이 먼 경찰의 오판과 언론의 호들갑인지, 아니면 두 번째 프로농구의 오욕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감독도 평소 도박을 즐겼다. 카지노에 가면 바카라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최근 이와 관련해 경기조작 혐의로 실형을 받은 한 스타 플레이어를 만났다. 사정을 들어보니 억울할 만도 했다. 경기 조작은 하지도 않았는데 범죄자들의 거짓증언으로 지나친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야기 도중 마치 고해성사와도 같은 말이 가슴에 꽂혔다. “내가 잘못은 했지. 그런 놈들과 평소에 카드를 치고, 어울렸으니 말이야. 그게 죄지 뭐겠어.” 맞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인기, 비인기종목을 막론하고 상습 도박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다. 차 트렁크에 고스톱 장판을 가지고 다니는 아마추어 지도자가 있었고, 태릉선수촌에서도 화투판이 벌어졌다. 기자들까지 이런 문화에 녹아들 정도였으니 심했던 것은 확실하다. ‘도박하는 스포츠인’ 문화를 없애야 한다. 그래야 더 큰 범죄인 경기 조작의 유혹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또 상습 도박의 정도가 심하다면 도박도 질병인 만큼 단도박 치료센터나 전문의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소홀히 하면 정말 인생이 부끄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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