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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측담장의 편파야구 V3는 백신이 아닙니다] 순리를 어긴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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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휴식 후' 등판했던 조쉬 린드블럼의 9일 경기 모습. 사진=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선수 셋 중 조쉬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커요. 턱이 발달했잖아요. 저희 팀과 궁합이 아주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조성환-홍성흔 선수를 잇는 '롯데의 턱'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시범경기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사직구장에서 만난 롯데 자이언츠 관계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롯데의 새로운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은 롯데를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연착륙 중이다. 린드블럼은 경기 당 6.72이닝을 지우며 이 부문 KBO리그 1위다. 불펜이 넉넉지 않은 팀 사정을 감안할 때, 등판 때마다 7이닝 가까이 던져주는 린드블럼은 그야말로 생명수다.

하지만 린드블럼은 가장 최근 등판이었던 9일 kt 위즈 전에서 부진했다. 5⅔이닝 7자책점 10피안타 4피홈런. 시즌 3패째를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린드블럼이 이날 로테이션 조정으로 인한 4일 휴식 후 등판했다는 사실이다.

거듭된 4일 휴식. 씁쓸한 별명 '린동원'

KBO 리그는 주 6일 경기 체제다. 우천 등의 외부요인이 아니면, 5인 선발로테이션 상 한 명의 투수는 주 2회 등판한다. 즉, 4일 휴식 후 등판할 수밖에 없다. 시즌의 3분의 1을 치른 현재, 린드블럼은 3경기에서 4일 휴식 후 등판했다. 그리고 린드블럼은 4일 휴식 후 등판할 때면 여지없이 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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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블럼의 휴식일에 따른 기록 분석.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더라도 결과가 극명히 다르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린드블럼의 가장 큰 장기인 소화 이닝은 평균 1이닝 이상 차이난다. 채 6이닝을 던지기 힘들어한다는 뜻이다. 3.20이던 평균자책점은 5.60으로 훌쩍 뛴다. 5일 휴식 후 등판할 때 3.26으로 수준급이던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FIP)'은 4일 휴식 시 7.34로 두 배 이상 상승한다. 이는 피홈런에 가중치를 두는 FIP 산정 방식 탓이다.

린드블럼은 4일 휴식 후 등판한 3경기에서 7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이는 전체 피홈런 12개 중 58%다. 범위를 좁혀 9이닝 당 피홈런 수치를 살펴보면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5일 휴식 후 등판에서 9이닝 당 0.62개의 홈런을 맞은 린드블럼. 그는 4일 휴식 후 3.57개의 피홈런을 기록 중이다. 무려 5배 이상의 차이다. ‘4일 휴식 후 린드블럼’과 ‘5일 휴식 후 린드블럼’은 완전히 다른 선수인 것이다.

4일 휴식 후 등판에 관한 KBO 리그 평균을 살펴보자. 린드블럼은 평균자책점 10걸에 오른 투수들 중 ‘4일 휴식 후 등판’ 2위(1위 헨리 소사·5회)다. 이대로라면 시즌이 끝날 때 7.3번의 '4일 휴식 후 등판'을 하게 된다. 이는 지난 시즌 앤디 밴헤켄(9번) 수준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수들의 사정은 어떨까?

'좋은 환경'을 찾아 두산 베어스를 택한 장원준은 단 한 번의 4일 휴식 후 등판도 없이 자신의 희망을 충족했다. 현재 압도적 성적으로 KBO 리그를 평정하는 양현종(KIA 타이거즈)도 단 한 번 4일 휴식 후 등판했을 뿐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타일러 클로이드-알프레도 피가로 원투펀치 역시 딱 한 번씩 4일 휴식 후 등판했다. 에이스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매 이닝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면서 상대를 압도하는, '구위형 투수' 린드블럼은 등판할 때마다 많은 이닝을 소화한다. 롯데 코칭스태프는 그런 린드블럼에게 4일 휴식 후 등판까지 바라고 있다. 이런 혹사 탓에 팬들이 그를 고(故) 최동원을 빗대 '린동원'이라 부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순리에 어긋난' 이종운 감독의 결정

앞서 언급한 것처럼 5인 선발 로테이션을 쓴다면 얼마간의 4일 휴식 후 등판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린드블럼의 4일 휴식은 순리를 거스른 결정이다.

많은 감독들이 '순리대로'라는 말을 자주 쓴다. 물론 야구에 정도(正道)는 없다지만 기본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것을 이렇게 칭한다. 반면 눈앞의 성적에 눈이 멀어 등판 간격을 조정하는 행동은 '순리에 어긋났다'고 표현한다. 린드블럼의 등판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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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경기에 등판해라" 롯데 이종운 감독.

지난 4일 선발이었던 린드블럼은 4일 휴식 후 9일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원래 순서대로면 9일 선발은 구승민 혹은 이상화의 차례였다. 손톱 부상에서 회복된 김승회가 10일 경기에 선발등판한 걸 감안한다면 '순리적인' 선택지는 세 개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종운 감독의 선택은 린드블럼이었다. 이상화의 등판을 연기했고 지난 5일, 구승민을 1군 말소했으며 김승회에게 하루의 휴식일을 더 줬다. 구승민은 앞선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가능성을 보였지만 단 한 번의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다. 반면 이상화는 연이은 부진에도 1군에서 기회를 받고 있다. 이상화가 최근 4번의 등판에서 4패를 기록 중이다. 투구이닝은 12⅔이닝으로 경기 당 3이닝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평균자책점은 14.92로 매우 높다. 그럼에도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다. 심지어 지난 2일 선발등판한 후 아직까지 등판 기록이 없다. 구체적인 이유 없이 이상화의 선발등판을 무기한 연기했고, 이를 메꾼 린드블럼에게 탈이 난 꼴이다.

심지어 이종운 감독은 9일 경기를 앞두고 "린드블럼에게 5이닝만을 맡길 것"이라 다짐했다. 이 경기에서 5이닝 4실점으로 안 좋았던 린드블럼은 결국 6회에만 석 점을 더 내주고 무너졌다. 이종운 감독이 자신의 약속만 지켰더라도 '해볼 만한' 경기였던 9일, 롯데는 2-7로 무너졌다.

'린드블럼의 긍정'이 미치는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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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블럼이 직접 적은 자신의 한글 이름.


사직구장에 방문할 때면 언제나 린드블럼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이 들린다. 또한 스프링캠프 때부터 한글 공부에 매진 중인 린드블럼은 이제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에 막힘 없다. 이러한 린드블럼의 넉살에 취재진과 선수들은 웃음을 짓는다. 바로 이것이 롯데의 '팀 분위기'를 만드는 비결이다. '밝은 린드블럼'이 팀에 미치는 영향은 성적 이상이다.

눈앞의 1승을 위한 로테이션 조정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탈은 선수들이 지치기 쉬운 여름에 나고 만다. 항상 순리를 지키는 삼성 류중일 감독이 통합 4연패를 이룬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유도 없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팬들을 납득시키기 힘들다. 순리를 거스른다면 그에 대한 타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종운 감독이 이상화의 '9일 이상 휴식'과 린드블럼의 '4일 휴식'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이종운 감독은 11일 경기 선발로 역시 4일 휴식한 브룩스 레일리를 예고했다.

*좌측담장: 결정적 순간. '바깥쪽' 공을 받아쳐 사직구장의 '좌측 담장'을 '쭉쭉 넘어갈 때'의 짜릿함을 맛본 뒤, 야구와 롯데 자이언츠에 빠진 젊은 기자.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야구가 좋고, 그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 목표 아래 매일 저녁 여섯 시 반 야구와 함께 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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