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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구단 인천은 어떻게 날아올랐나?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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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의 포스터.

K리그를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은 ‘숭의 아레나 파크’입니다. 2만 석 규모의 이 축구 전용 경기장은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어느 스타디움을 연상케 합니다. 우주선 같은 외관, 그라운드와 바로 붙어 있는 관중석, 국내 축구장 최초의 피크닉석까지. 게다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관중석 의자의 색깔을 인천 유나이티드의 팀 컬러인 푸른색과 검은색 줄무늬로 칠해서 더욱 멋져 보이네요. 정말 어느 유럽 경기장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인천의 자랑은 경기장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을 다룬 영화도 있다고 하네요. 영화 <비상>입니다.

영화와도 같던 꼴찌 인천의 반란기
이 영화는 인천이 파란을 일으켰던 2005년 K리그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2002 월드컵의 열기에 힘입어 2004 시즌부터 K리그에 참여하기 시작한 젊은 팀이지요. 신생팀인데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 시민구단이었지만 창단 초기 인천의 행보는 공격적이었습니다. 독일 출신의 명장인 베르너 로란트(Werner Lorant) 감독을 영입했고, 터키 국가대표 수비수인 알파이 외잘란(Alpay Fehmi Ozalan)과 계약하는 등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했었죠. 하지만 이 두 외국인이 개인 사정과 여러 가지 일로 인천을 떠나고, 인천은 첫 해에 13개 팀 중 12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둡니다.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었지요.

영화에서는 창단 후 두 번째로 나섰던 2005 시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 명장 로란트의 뒤를 이은 장외룡 감독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내겁니다. 하지만 패배 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은 시큰둥합니다. 게다가 용병 라돈치치는 게으름을 피우며 국내 선수들과 융합하지 못합니다. 전술토의를 하다가도 곧장 말싸움으로 번지는 등 선수들 사이에서 예민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죠. 인천의 단장은 과거 K리그를 주름잡던 부산의 명문 팀 대우 로얄즈를 이끌던 안종복 단장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시민 구단의 여건상 원하는 대로 선수를 영입하기가 힘듭니다.

무명의 선수들 사이에서 그나마 국가대표팀 출신의 선수가 있었지만 여러 조건 때문에 선뜻 인천행을 결심하지 못하고, 갈등합니다. 다 같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와해된 분위기에서 6강 플레이오프를 노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와 같았지요.

하지만 장외룡 감독은 특유의 조직적인 축구로 서서히 기적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고, 콧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독특한 스타일의 장외룡 감독. 그가 쓰는 모자에는 그의 축구 신념을 적은 글귀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작전을 지시하는 화이트보드에는 언제나 한자로 ‘인내, 노력, 희생’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하는 그의 축구 철학은 서서히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인천은 드디어 2005 K리그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무심하던 언론들도 서서히 인천에 관심을 보입니다. 선수들도 한번 이변을 만들어내자는 각오를 다집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습니다. 얇은 선수층으로 1년의 긴 시즌을 버텨 온 인천. 선수들의 체력은 고갈되었고, 주장인 임중용은 시력 이상을 호소하면서도 경기에 나섭니다. 하지만 당시 K리그의 최고 선수였던 이천수가 이끌던 울산에 압도적인 패배를 당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 하지만 누구도 그 시즌에 인천이 준우승을 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진 못했습니다. 팬들도 울고 선수들도 울고. 그들은 자랑스러운 준우승컵을 높이 듭니다. 그렇게 시민 구단 인천의 비상은 막을 내립니다.

경기장 밖에서 일어나는 축구계의 리얼 다큐멘터리
이 영화에서는 실제 축구장에서의 플레이가 아닌, 라커룸과 숙소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축구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기 중에는 그저 근엄하게 그라운드를 노려보거나 가끔씩 고함을 지르기만 하는 감독들이, 막상 라커룸에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거나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어느 선수를 꾸짖거나 혹은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장난을 치는 행동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선수들 간의 갈등도 실감나게 볼 수 있습니다. 실력은 있지만 말썽꾸러기인 용병 라돈치치. 그는 선수들이 모두 모여 골대를 들어 옮길 때, 혼자만 골대를 들지 않는 요령을 피웁니다. 주장인 임중용은 호통을 치며 라돈치치를 혼내고 라돈치치는 그런 주장을 못 본 체하며 도망갑니다. 이런 장면은 축구장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지요.

또한 인천의 안종복 단장이 연봉 문제로 에이전트와 고성을 내며 싸우는 장면도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신문 기사를 통해서 결과만 알게 되는 선수의 몸값협상과 이적이, 실제로는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흥정의 과정을 숨기고 있다는 게 재미있네요.

이처럼 축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은 그라운드 밖에서 벌어지는 축구팀의 일상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축구계에 대한 팬들의 이해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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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인천의 적수로 등장하는 이천수. 지금은 오히려 인천 소속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우 로얄즈, 그리고 이천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대우 로얄즈’라는 팀입니다. 현재 부산은 ‘야구의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직 구장의 롯데 관중들을 보면 축구팬 입장에서도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죠. 하지만 과거 부산에도 축구 열기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우 로얄즈’ 축구팀이 활동하던 시절입니다. 축구에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었던 대우 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만든 팀인 만큼 호화로운 멤버를 자랑했었지요. 대우 로얄즈를 통해 김주성과 안정환이라는 스타가 나왔고, 1997년에는 전관왕이라는 위업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IMF 사태를 거친 이후, 대우 그룹의 해체와 함께 로얄즈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에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어 오늘날의 ‘부산 아이파크’ 축구팀으로 이어지지요.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종복 단장과 장외룡 감독은 한때 대우 로얄즈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우 로얄즈의 인수 과정에서 상처를 입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 신생팀 인천에 들어오죠. 또한 인천의 많은 선수들이 과거 부산에서 뛰었던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는 인천이 결승전에 진출하기 위해 부산 아이파크와 결전을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국 축구의 그리움이 된 ‘대우 로얄즈’의 아픔이 이 영화에 흐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인천을 괴롭히던 상대편의 축구 스타 이천수 선수. 지금 이천수 선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인천에서 뛰고 있습니다. 축구의 세계는 마치 인생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한 클럽의 시즌을 다룬 독특한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오늘의 영화, <비상>이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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