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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체된 천재’ 브라이스 하퍼의 부상 경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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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 하퍼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의 디비전시리즈 4차전. 팀이 벼랑 끝에 몰린 가운데 7회초 타석에 들어선 하퍼는 스트릭랜드의 97마일 직구를 걷어 올려 공을 우측 담장 너머 맥코비 만으로 날려 보냈다. 동점 솔로 홈런이자 그의 디비전시리즈 세 번째 홈런포였다. 9회초 다시 한 번 하퍼는 한 점 뒤진 상황에서 타석에 섰다. 마지막 이닝의 2아웃, 누상은 텅 비었지만 홈런 한 방이면 승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샌프란시스코 마무리 카시야는 철저히 변화구로 하퍼를 상대하며 장타를 경계했고, 볼넷으로 그를 내보냈다. 바로 앞선 타석에서 확인한 엄청난 배트스피드와 그에 비롯되는 무시무시한 파워. 하퍼의 존재감이 고스란히 묻어난 장면이었다.

올 시즌 워싱턴의 마지막 출루로 기록될 9회초 하퍼의 타석은 워싱턴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압축해서 연출된 순간이었다. 보는 이를 들썩이게 하는 그의 퍼포먼스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의 지난 3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가장 과대평가된 선수로 그를 꼽기도 했으며, 마이크 트라웃의 엄청난 활약은 이 같은 평가를 더욱 부채질했다. 무엇보다 그는 꾸준하지 못했다.

트라웃의 역사적인 2012시즌이 끝나고, 2013년 각종 언론에서는 올해는 하퍼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하퍼의 MVP 수상을 점친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숫자들은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상이 문제였다.

지난해 하퍼는 마이애미와의 개막전에서 첫 두 타석을 모두 홈런으로 연결시키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어가는 듯 했다. 4월에만 9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순항을 이어가던 하퍼는 5월 중순 다저스전에서 타구를 쫓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담장에 부딪힌 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다음날 경기에 결장했지만 이내 그라운드에 복귀한 하퍼는, 약 열흘 뒤 당시 충격의 여파로 경기 도중 무릎에 통증을 느끼고 부상자 명단에 등재됐다.

하퍼는 7월의 첫 날 복귀했다. 하지만 복귀 후 5경기에서 19타수 1안타에 그치며 2할 8푼대의 타율이 2할 6푼까지 곤두박질쳤다. 정규시즌의 마지막 날 타율을 .274까지 끌어올렸지만, 복귀 이후 그만의 다이나믹함은 무뎌져 있었다. 특히 장타력의 급감이 눈에 띄었는데, 부상 전 44경기에서 12개의 홈런을 몰아쳤으나 복귀 이후 74경기에서는 단 8개의 홈런에 그쳤다.

올 시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4월 말 샌디에이고전에 나선 하퍼는 3회말 싹쓸이 3타점 3루타를 때려내는 과정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도중 엄지손가락 인대에 부상을 입었다. 5회 수비에서 교체된 하퍼는 이틀 뒤 부상자 명단에 등재됐다. 그리고 약 두 달 뒤, 6월의 마지막 날 복귀한 하퍼는 이후 12경기에서 40타수 6안타의 침묵으로 전년도의 악몽을 재현하고 만다. 2할 9푼에 육박하던 타율은 .244까지 떨어졌으며, 급기야 8월 초 현지 언론에서는 포스트시즌에 대비해 그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야 한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윌리엄스 감독이 직접 나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며 일찌감치 못을 박았고, 하퍼 역시 8월 말 이후 컨디션을 회복하며 타율을 .273까지 끌어올린 뒤 정규시즌을 마감했다.(13홈런 32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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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수가 급증한 브라이스 하퍼


하퍼는 올 시즌 100경기에서 104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그의 삼진율은 26.3%로, 지난해의 18.9%와 2012년의 20.1%에 비해 크게 치솟고 말았다. 규정 타석에 진입한 선수들에 그의 숫자를 대입하면 14번째로 높은 수치다. 그의 삼진은 특히 부상 복귀 후 7,8월에 집중 됐는데, 두 달간 53경기에서 무려 64개의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나머지 47경기 36개) 타자에게 손가락 부상, 특히 타격의 마지막 순간 엄청난 구속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엄지손가락 부상에 대한 부담은 추신수의 예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하퍼는 지난 2년 연속 규정타석에 진입하지 못했다. 올 시즌 손가락 부상의 경우 장타력의 하락(.477-.486-.423)과 도루 숫자의 급락(18-11-2)을 가져왔다. 도루의 경우 시도 자체를 4차례 밖에 하지 않았을 정도로 손가락 부상에 대한 부담을 안고 경기에 임해야 했다. 그를 5툴을 넘어서 6툴 혹은 7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파이팅과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부상은 그만이 지닌 색깔을 희석시키고 말았다.

하퍼와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의 부상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원인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부상이 아니다. 지난해 다저스전의 펜스 충돌과 올 시즌 3루타 과정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도중 당한 부상 모두는 그의 허슬플레이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과유불급. 실제 그의 플레이가 이 단어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하퍼의 허슬플레이는 본인의 커리어에 방해가 되고 있다.

지난 3년간 그가 기록한 fwar 9.5는 올해 그가 불과 21세 시즌을 보낸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준수한 수치다. 또한 아직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선수들이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숫자 이상으로 훨씬 많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브라이스 하퍼이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야구계의 르브론'이라는 평가와 함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모델이 된 스타성과, 20-80 스케일의 파워 부분에서 80점을 받은 잠재력의 끝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그들의 욕구는 어쩌면 하퍼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일 것이다.

그를 두고 비롯되는 엇갈리는 평가 속에, 올해 디비전시리즈에서 확인한 그의 존재감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내년 시즌 150경기 이상 소화한 하퍼의 성적에는 어떤 숫자들이 기입돼 있을까. 정답을 확인하기 위한 첫 번째 관건은 일단 부상을 피하는 일이다.

[헤럴드스포츠 = 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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