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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화된 첼시 훌리건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풋볼 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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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팩토리(Football Factory)>는 다른 훌리건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마약으로 얼룩진 밑바닥 인생들의 타락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과연 이게 가치 있는 일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죠.

밀월과의 전쟁을 앞둔 첼시 훌리건들의 이야기
토미(Tomy)는 첼시의 한 펌(firm, 훌리건 조직을 의미하는 은어)에 소속된 젊은이입니다. 그의 주변엔 많은 동료 훌리건들이 있죠. 로드(Rod)는 어렸을 때부터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같이 해 온 절친(?)입니다. 제버디(Zeberdee)는 펌의 막내로서 빈집을 털고 조무래기 마약상들에게서 마약을 뺏는 좀도둑입니다.

이들에게는 형님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빌리(Billy)입니다. 40대 중년에 두 아들까지 두었지만 안 끼는 싸움이 없는 타고난 불량배이지요. 이들 모두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훌리건들의 싸움터를 들락날락하면서 싸움과 마약밖에 배운 게 없는 길거리 인생들입니다.

영화는 첼시가 토트넘(Tottenham Hotspur), 리버풀(Liverpool FC), 그리고 밀월(Millwall FC)과의 원정 경기를 다니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매 원정경기 때마다 토미와 로드, 제버디, 그리고 빌리가 중심이 된 펌 조직원들은 상대편 훌리건들과 패싸움을 벌입니다.

어느 날, 토미와 로드는 밀월 훌리건의 여동생을 건드리게 되고, 밀월 훌리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토미는 밤마다 자신이 집단폭행 당하고, 조직의 막내 제버디가 죽는 악몽을 꾸게 됩니다.

한편 로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열애 중인 애인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하필이면 밀월과의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로 한 것이지요. 그는 축구와 사랑 사이,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음 편한 길거리 인생과 답답한 중산층의 삶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제버디는 빌리와의 관계로 마음고생을 합니다. 제버디는 실수로 빌리의 집을 털게 되고, 이로 인해 빌리에게 미운털이 박힙니다. 노골적으로 제버디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빌리에게 제버디는 앙심을 품죠.

빌리는 자신이 펌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연륜이 있고, 밑에 따르는 부하들도 제법 있음에도 조직의 지도자들이 자기를 얼뜨기 취급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닥치는 대로 싸우고 문제만 일으킬 뿐, 훌리건 조직을 이끌 지도력이 없다며 원로들은 빌리를 자기들 틈에 끼워주지 않지요. 빌리는 밀월과의 경기 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합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을 안고 드디어 첼시와 밀월 간의 컵대회 경기 날이 옵니다. 막상 경기가 열리는 축구장에 훌리건들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주변의 공터에 두 팀의 훌리건들이 집결합니다. 빌리는 자기를 따돌리는 원로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싸움의 전면에 나서죠. 로드는 마약에 취한 상태로 여자 친구의 부모님에게 욕설을 한 뒤 싸움에 합류합니다. 토미는 패싸움 도중 자기를 뒤쫓던 이들에게 붙잡히고, 악몽에서 봤던 대로 집단 폭행을 당합니다.

결국 경찰들이 출동하고, 빌리는 재판 끝에 7년 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병원 신세를 지게 된 토미. 토미는 마음속으로 ‘이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라고 되묻지만 이내 ‘당연하지!’라고 외치며 동료들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날 밤, 제버디는 동네 마약상이 쏜 총에 맞고 죽으며 영화가 끝납니다. 토미의 꿈에 나왔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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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건판 ‘비열한 거리’

우리 영화 <비열한 거리>의 주인공은 조폭 조직 내에서 몇몇 동생들을 이끄는 점조직의 리더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던 의리나 폼 나는 삶은 온데간데없고 폭력과 배신만이 난무하는 조폭들의 세계. 그 세계에서 주인공은 분투하지만 결국 조직 내에서 배신당하고 죽게 되죠.

마찬가지로 잔인하긴 해도 다소의 낭만을 보여주던 다른 훌리건 영화와 달리 <풋볼 팩토리>는 철저하게 타락한 삶 그 자체를 담담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시간만 나면 코로 마약을 흡입하는 훌리건들, 파키스탄 노동자와 노인 같은 약자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솜털도 사라지지 않은 꼬마들이 훌리건들과 함께 범죄에 물드는 모습 등 충격적이면서도 잔인한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

영화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과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2차 대전 참전 용사인 토미의 외할아버지는 전쟁에서 이겼지만 결국 이렇게 형편없는 젊은이들이 판치고 있는 영국 사회를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죠. 전쟁영웅이라며 자기를 떠받드는 훌리건들을 향해 토미의 외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2차 대전 때 목숨을 걸고 싸운 건, 너희 같은 파시스트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였어.”

밀월과의 패싸움이 끝난 후, 토미는 자신을 계속 괴롭히던 질문에 장난스럽게 대답합니다. 이렇게 폭력과 마약으로 찌든 삶도 괜찮다고.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악몽과 달리 그 때까지는 제버디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렇게 살아도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으리라는 자기 확신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버디는 결국 총에 맞아 죽습니다.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바로 이 장면에 담겨 있는 것 같군요. 24살의 나이에 헛된 죽음을 당한 제버디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것이 과연 가치 있는 삶, 가치 있는 죽음인지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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