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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한의 사람人레슨] (6)골프라면 대통령도 설득한다 - 전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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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으로 시작하고 싶다. 왜 골프라는 운동을 유독 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할까? 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있겠지만 필자는 골프 덕에 먹고 사는 사람으로 아무래도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 동안의 직,간접적 경험을 종합하면 골프 특성에서 비롯되는 나름 3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골퍼는 팅 그라운드로 나갈 때 좋은 샷을 위해 겸손해야 한다. 덤비지 않고, 마음이 안정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18홀을 도는 동안 과감하게 도전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 자제하는 인내도 있어야 한다. 심지어 때로는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 러프에 빠졌을 때 뒤로 갈 수도 있다. 안전이 중요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셋째, 골프는 혼자 치는 게 아니고 동반자가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프로선수라면 갤러리까지 배려해야 한다.

이런 3가지가 교차되고, 혼합되는 것이 18홀의 미학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참 인생살이와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 등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의 삶과 닮은 이런 골프의 매력에 빠지지 않나 싶다. 한 예를 들어서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은 중요한 사람을 고를 때 18홀을 함께 돌면서 평가를 했다는 후문이 있다. 겸손, 도전, 인내, 안전, 배려, 이런 것을 다 보려고 했던 것일 게다.

사회 지도층 인사를 꿈꾸는 사람이 많다. 예비 지도층 인사들에게도 골프는 좋은 스포츠라 할 수 있다. 아니, 평범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사람 인생이야 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한 번 골프를 접하면 예찬론자가 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접근성을 높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골프를 즐기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왜 요즘은 스크린골프도 있지 않은가?

오늘 [사람인레슨]의 ‘사람’은 사회지도층 인사로 골프사랑이 남달랐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이다. 골프가 업인 필자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골프사랑이 대단하신 분이다. 보통 고위 공직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골프예찬론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가 좋아도 조용히 다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윤철 이사장은 훌륭한 관료이면서 공공연하게 골프 전도사를 자청했다.

삼고골프
이와 관련해 필자가 전 이사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일화가 있다. 공정거래위원장-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쳐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막 발탁됐을 때이니 2002년 초였을 것이다. 그는 임명장을 받고 처음 독대를 하는 자리에서 모든 얘기를 마친 후 대통령에게 한 가지 당돌한 건의를 했다.

“대통령님, 저는 누구보다 사명감을 갖고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주말 쉴 때는 운동을 꼭 좀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월요일부터 재충전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무슨 운동인가?”

“골프를 합니다.”

이 대목에서 골프를 전혀 하지 않는 김대중 대통령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 10초간 말이 없었다. 툭하면 고위공직자들에게 ‘골프금지령’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골프를 하지 않는 대통령에게 비서실장이 대놓고 골프를 하겠다고 했으니 산전수전 다 겪은 대통령도 살짝 당황했던 것이다.

“일에 지장 없도록 하라고.”

일단 문법상으로는 허락이다. 하지만 1966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4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한 전윤철 이사장은 사람 말의 문맥을 읽을 줄 안다. ‘이건 허락이 아니다. 이래서는 운동 절대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뒤 종합 보고가 있었고, 역시 모든 보고가 끝난 후 전윤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똑같이 건의했다. 골프를 하겠다고.

“지난 번에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김 대통령은 첫 허락을 상기시키며 다시 허락했다. 하지만 전 비서실장은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다시 1주일 뒤 똑같이 건의했다. 주말에 골프를 쳐야겠다고.

“왜 자꾸 그래? 내가 하라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은 살짝 화를 섞어 3번째 허락을 했다. 그리고 그제야 비서실장은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편한 마음으로 골프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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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대통령(오른쪽)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전윤철 이사장.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관료 사회의 맨 꼭대기에서 이러기 쉽지 않다. 골프를 하지 않는 최고 권력자에게 어떻게 3번이나 ‘골프를 치겠다’고 같은 건의를 하겠는가? 업무에 조금이라도 부족한 사람은 아예 이런 건의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이사장의 골프사랑은 확실하다. “우리나라의 경제, 비즈니스 중 90%가 골프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골프를 활성화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골프를 안 치지만 그 시절 골프에 제약이 없었다.”

아이 노무현
고 노무현 대통령 때는 전윤철 이사장은 감사원장을 지냈다. 자신보다 젊은 대통령이 하도 힘들어 하니 한 번 용기를 내 건의를 했다. 이번에는 ‘내가 골프를 치겠다’가 아니라 대통령 더러 골프를 하라는 권유였다. 노 대통령은 골프를 좋아했다.

“일요일, 쉬는 날 저하고 골프 한 번 하시겠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욕먹는데 골프 나갔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요.”

“저랑, 그러니까 감사원장이랑 나가면 괜찮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과 감사원장은 뉴코리아CC로 갔다. 그리고 1번 홀 티샷 후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도 전 이사장의 눈앞에서 생생하다고 했다. 티샷을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카트를 타지 않고 페어웨이로 뛰어갔다. 그런데 공을 향해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갈짓자로 신나게 달렸다. 일국의 대통령이 마치 꼬마 아이들이 어린이날 대공원에 나와 뛰어 다니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저렇게 좋아하시다니….’ 이 장면을 감사원장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2번 홀 티에서 감사원장은 대통령에게 물었다.

“대통령님, 나오니까 좋으시죠?”

“새장에 갇혀 있다가 풀린 기분입니다.”

“골프가 이렇게 좋은 운동입니다. 심신단련에 큰 도움이 되죠. 많은 공무원들이 골프를 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주말에 자기들끼리 말입니다. 쉬는 날 자기 돈 내고 자기들끼리 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골프 그린피 낮추고, 세금 낮추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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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철 이사장이 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원장 임명장을 받고 있는 모습.

어떤가? 이쯤이면 골프 홍보대사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전윤철 이사장은 75세인데 지금도 골프를 1주일에 한 번은 친다. 겨울엔 스키도 타는 등 유명한 노익장으로 건강관리를 잘한다.

전 이사장의 골프 스윙을 보면 평소 꼿꼿한 성격하고 참 흡사하다. 어드레스 자세에서 나이가 들면 보통 등이 굽어진다. 엉덩이가 뒤로 빠지는 모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 이사장은 대쪽 같은 성격처럼 70을 훌쩍 넘긴 지금도 등이 곧게 펴져 있다. 어드레스가 좋은 것이다. 많은 나이에도 골프를 잘 치는 비결이 여기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많은 아마추어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허리부터 어깨까지 등(척추라인)을 곧추 펴는 것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습장이 아니더라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거울 보면서 어드레스 때 등이 곧게 펴지도록 자세를 잡아야 한다.

전 이사장의 골프실력은 옛날에는 70대 스코어도 곧잘 쳤으나 요즘은 연세가 있으니 80대 중반이 많다고 한다. 아직 에이지 슈트는 못한 것으로 안다.

전 이사장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정통 관료다. 장관급 이상 정무직만 여섯 차례를 지내 '직업이 장관'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역대 감사원장 중 유일하게 연임했고, 세계감사원장회의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공무원으로 이 정도면 성공을 해도, 큰 성공을 한 것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도 아니다. 목포 출신으로 고교(서울고)시절부터 서울로 유학을 와 공부를 했고, 집안이 어려워 명동 근처에서 군밤장사를 하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 법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후 집안 사정을 고려해 전공을 의대로 바꾸려고 했다. 산부인과 의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런 뜻을 모친에게 알렸더니 장문의 편지가 왔다고 한다. ‘돈도 중요하지만 윤철이 너는 법을 공부해서, 그리고 국가의 공복이 돼서 이 나라를 올바로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는 배고파도, 돈 못 벌어도 나랏일을 하라는 모친의 말을 평생 지킨 셈이다.

이런 정통 관료가 골프 애호가를 넘어 골프 전도사가 됐으니 골프계로서는 참 좋은 일이었다. 누가 골프에 대해 섣부른 비난론을 꺼낼라 치면 상대가 누구이든 전 이사장은 받아버린다.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골프가 왜 좋은 운동인가를 설명한다. 이런 일로는 윤세영 SBS 명예회장도 유명하지만 전 이사장도 뒤지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그가 2012년 한국프로골프협회장으로 일시 취임했지만 골프계 집안싸움으로 골프사랑을 제대로 펼쳐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남녀 프로들이 많다. DNA가 골프와 맞고,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선수가 배출되는 것이다. 또 직업선수 뿐 아니라 일반인도 몇 만 원만 있으면 골프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행정가로서 그런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골프는 문화의 하나다. 그리고 문화는 변한다. 예전 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물었지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에는 ‘골프금지령’ 같은 말이 없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골프 전도사를 자처하는 전윤철 이사장과 같은, 소신 있는 골프 전도사가 필요한 것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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