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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한의 사람人레슨](4) 90타를 치는 진정한 골퍼 - 이홍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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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홍렬 선배와 필자.

방송인 이홍렬 씨(개인적으로 선배라고 부른다)를 알게 된 것은 방송을 통해서였다. 2004년 1월부터 방송됐으니 촬영은 2003년 겨울이었을 게다. 케이블채널로 나간 ‘이홍렬의 월드골프’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중국(하이난도), 말레이시아, 태국, 일본 등의 유명골프장에서 촬영해 6개월 정도 전파를 탔다.

필자도 나름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깜짝 놀란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이미 이홍렬씨는 국내 최고의 MC였다.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까지 진행할 정도로 그의 구수한 입담은 유명했다. 그런데 이런 대가가 두세 줄짜리 오프닝 멘트를 끊임없이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월드골프의 이홍렬입니다. 오늘은 말레이시아의 000에서~.” 이렇게 말이다. 촬영이 잡히면 그 전날밤부터 슛에 들어가기 전까지 몇 백번을 연습을 했다. 중얼중얼 또 중얼중얼.

“선배님, 이렇게 간단할 걸 그리 많이 연습하세요?”

우문현답이라고 대답이 더 묵직했다.

“오프닝은 시작이에요. 무슨 일이라도 시작이 중요하죠. 방송도 첫 시작이 중요합니다. 이게 잘 되면 그날 방송이 잘 됩니다. 오프닝을 하는데 NG가 나면 두세 번째는 더 말리지요. 그래서 짧지만 계속 반복해서 하는 겁니다.”

그렇게 방송경험이 많은 사람도 이렇구나. 방송 참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 오프닝이 이 정도이니 방송은 ‘무지하게 노력한다’ 그 자체였다. 아는 것도 여러 차례 확인한다. 돌다리를 백 번쯤 두드려보고 넘어가는 느낌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니 방송 중 “어떻게 저 짧은 순간에 저런 멘트가 떠오르실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행동에 옮기기 전에 충분히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홍렬 씨는 그런 적이 없다. 단순한 오프닝도 그렇게 연습하는 사람인데 100타를 치면서 골프방송의 MC를 맡았으니 얼마나 공부를 했을까? 자연스레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함께 외국을 다니면 사람을 깊이 사귈 수 있다. 생활을 함께 하니 그렇다. 요즘 젊은층에게 들으니 유재석 씨가 ‘유느님’으로 불릴 정도로 배려의 아이콘이라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 원조는 이홍렬 선배인 것 같다.

이홍렬 선배는 PD와 출연진은 물론, 카메라맨, 아르바이트생까지 다 챙긴다. 겉으로 생색내는 수준이 아니다. 동작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배어 있다. 더운 나라에서 촬영이 많았는데 물 같은 것을 나눠주는 것은 늘 그의 몫이었다. 나이나 위치로 보면 앉아서 받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인사도 항상 먼저 한다. “힘드셨지?” 하고 친숙하게. 어디 문을 통과할 때도 남에게 먼저 우선권을 준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습관을 몸에 익힌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러니 골프는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매너가 훌륭했다. 그리고 그와의 라운드는 즐겁기만 하다. 동반자가 퍼팅을 마치기 전까지 절대 그린을 떠나지 않는다. 이거 생각보다 잘 지키지 않는 아마추어가 많다. 슬쩍 먼저 카트로 향하는 분들이 많다. 이홍렬 선배는 퍼팅뿐 아니라 티샷부터 페어웨이까지 남의 샷을 참 잘 봐준다. 100타를 치던 때였는데 그런 배려를 다한다는 게 참 대단해 보였다. 자기 골프도 정신없을 때인데 말이다.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매너를 잘 지키고, 배려를 우선하는 사람 있는가 하면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절로 주변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남을 배려하고, 스스로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연습하고 준비하는 자세.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홍렬 씨는 진정 존경을 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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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샌드와 드라이버’로 불렸다. 당신이 키가 작은 반면 나는 큰 편에 속했고, 골프비거리도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 '샌드 형님'이 진지하게 미안함을 표시해왔다.

“나는 골프를 잘 못 미치기 때문에 골프방송에서 MC를 할 자격이 없어요.”

내 대답은 이랬다. “자격이 없다고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골프를 아무리 잘 쳐도 배려 없으면 골퍼의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지켜봐왔는데 100타를 쳐도 선배님은 남 배려 다 합니다. 충분히 MC를 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홍렬 씨는 이 말에 크게 고마워했다.

이홍렬 씨는 지금까지도 자주 만난다. 얼마전 골프장에서 만나 ‘사람人레슨’이라는 칼럼을 쓰는데 선배님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알렸다. 대답은 유쾌한 “마음대로 하십시오”였다. 그리고 “나쁘게든 좋게든 있는 대로 쓰면 다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지나치고 나니 제법 이홍렬다운 대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 신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100타 탈출>이라는 골프칼럼까지 쓸 정도로 타수줄이기를 열망했지만 이 선배는 스코어는 철저했다. 라운드 할 때 자신의 것은 물론, 스코어카드를 하나 더 챙겨 동반자들의 스코어까지 기록했다. 캐디의 스코어카드는 첫 홀 올보기 이렇게 돼 있어도 이홍렬 씨의 스코어카드는 진실 그 자체다. 처음 100타를 깼을 때 [여기는 레이크사이드 동코스, 구력 4년만에 드디어 100파 97을 치다. 오바]라는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우스갯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 스코어를 속이는 사람은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참, 이홍렬 씨와 관련한 원포인트레슨은 ‘체중이동’이다. 좀 친해진 후로는 필자가 놀리곤 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이홍렬 씨는 체중이동을 못했다. 스윙 때 체중이 오른발에서 왼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걸 반대로 했다(^^). 고쳐드리기 위해 필자가 흉내도 많이 내봤다.

그때 자극을 받아서였까? 골프장에서 잠깐 만난 후 헤어질 때 이홍렬 씨는 “저 요즘은 체중이동 잘하고 있어요”를 작별멘트로 보냈다.

사실 아마추어 분들은 90%가 이 체중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거리가 안 나고, 힘이 들어가고, 그게 원인이 돼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요령 하나 알려드리겠다. 먹고 살기 바쁜데 이 체중이동을 연습장이나 필드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면 힘들다. 사무실에서 집에서 틈이 나면 골프 어드레스를 해 보자. 마음 속으로 ‘하나’에 왼발을 땅에서 떼고, ‘둘’에 왼발로 땅을 디디는 동작을 하자. 이게 뭐 큰 도움이 될까 싶겠지만 의외로 우리 몸은 이 동작을 통해 체중이동을 기억한다. 스윙리듬에도 도움이 되고 거리도 늘어난다.

체중이동은 스윙에서 가장 중요하다. 한 80% 비중이 있다. 거리는 힘이나 욕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체중이동으로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이 ‘하나 둘 훈련’이 필요하다. 아침 저녁으로 백 번씩 해보자. 한 달이면 어느 누구도 스윙이 좋아진다. 어느날 “아!”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내 스윙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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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홍렬 씨는 골프 매너만 좋은 게 아니다. 봉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토종단을 했는데 목표인 1억 원을 넘어 3억 원을 모았다.

다시 이홍렬 선배로 돌아가자. 이 선배는 요즘 80대 후반, 보기플레이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스코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체중이동이 좀 안 되면 어떤가? 18홀을 돌며 좋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웃을 수 있으니 골프는 참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90타를 치지만 그는 진정한 골퍼라고 할 수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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