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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은중독의 편파야구 Just For Twins!] 국가대표 4번 타자 vs 국가대표 4번 타자
3일 경기 결과 : 넥센 히어로즈 5-11 LG 트윈스

INTRO - 누가 진짜 국가대표 4번이었을까?
진짜 국가대표 4번 타자와 ‘별명이’ 국가대표 4번 타자가 붙었다. 그것도 4강 싸움의 사활을 건 엘넥라시코 3연전 첫 경기에서.

진짜 국가대표 4번 타자는 두 말할 것도 없이 히어로즈의 박병호다. 박병호는 이견이 없는 리그 최고의 타자. 얼마 전 마무리된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는 부동의 4번 타자를 맡았다. 그가 국가대표 4번인 것에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다른(?) 국가대표 4번 타자는 트윈스의 최경철이다. 시즌타율 2할 1푼대, 홈런은 고작 네 개. 아무리 기록을 뒤져봐도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별명은 엄연히 ‘최국대’다. 트윈스 팬들에게 그는 국가대표 4번 타자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다. 그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너무 잘 알려져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이 두 국가대표 4번 타자의 대결 결과는 ‘별명이’ 국가대표 4번 타자인 최경철의 압승이었다. 이날 진짜 국가대표 4번 타자 박병호에게는 히어로즈가 만든 찬스란 찬스가 모조리 몰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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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3안타, 2타점, 2득점의 맹활약으로 팀을 승리로 이끈 최경철. 그는 이날 히어로즈 박병호와 벌인 국가대표 4번타자 대결(?)에서 압승을 거뒀다.

1회초 1사 2, 3루에서 박병호는 파울 플라이로 아웃됐다. 3회 초 발 빠른 주자 서건창이 출루한 무사 1루의 기회에서 박병호는 병살타를 때렸다. 두 점 차로 따라붙은 7회 초 2사 3루에서 박병호는 헛스윙 삼진으로 찬스를 날렸다. 비록 박병호는 9회초 2사 1, 3루에서 2타점 적시 2루타를 날리기는 했지만, 이때는 이미 스코어가 11대 3으로 크게 벌어져 승부가 결정됐던 때였다.

반면 ‘최국대’는 이날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3타수 3안타 2득점 2타점. 1-2로 추격한 2회말 1사 2, 3루에서 최경철은 내야안타를 날리며 동점 타점을 만들었다. 4회말에는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을 골라 제몫을 해내더니, 6회에도 선두타자로 나와 2루타를 만들고 결국 홈을 밟았다. 두 점 차이로 쫓긴 7회초에는 1사 1, 3루 위기에서 리그에서 가장 빠른 주자 서건창의 2루 도루를 잡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7회말 2사 2루에서 그는 좌전 적시타를 날리며 점수를 벌렸다. 누가 뭐래도 이날의 히어로는 리그를 씹어먹는 진짜 국가대표 4번 타자 박병호가 아니라 ‘별명이’ 국가대표 4번 타자인 최경철이었다.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야구가 재미있는 이유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홈런은 박병호만 치고, 항상 스포트라이트는 박병호만 받는다면 수많은 팬들이 야구에 이처럼 열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리그 최고의 타자와 리그에서 가장 낮은 타율권에 머무는 타자의 승부에서, 야구의 신(神)은 간혹 후자의 손을 들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경철의 분전이 더 감격적인 이유는 그가 리그에서 가장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꽃 핀 그의 야구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 3일만큼은 트윈스 팬에게 최경철이 ‘진정한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게임의 핵심 - 제갈양상문 vs 염갈량
두 국가대표 4번 타자(?)의 대결 못지않게 이날 관심을 끈 것은 양 팀 감독의 지략 대결이었다. 묘하게도 두 감독은 모두 삼국지에 나오는 최고의 책사(策士) 제갈량과 관련한 별명을 갖고 있다. 양상문 감독의 별명은 제갈양상문, 염경엽 감독의 별명은 염갈량이다.(물론 이는 경기를 잘 이끌었을 때 이야기다. 작전 실패로 경기를 패하면 두 감독의 별명은 바로 ‘돌상문’, ‘염레기’로 격하된다. 이런 비난은 한국에서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감수해야 할 숙명인지도 모른다.)

염 감독은 지난해 7월 5일, 8회말 2사 만루에서 3중 도루라는 희한한 작전을 성공시키며 트윈스를 패배로 몬 경험이 있다. 스스로가 “세밀한 야구를 중시한다”고 할 정도로 허를 찌르는 다양한 작전에 능하다. 전형적인 지장 유형이다.

양 감독은 투수 조련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 대세를 중시해 무리를 시키는 법이 없다. 긴 호흡으로 시즌을 이끌며 차곡차곡 순위를 올렸다. 자이언츠 감독 시절에는 신인들을 과감히 기용해 장원준, 이대호 등 걸출한 스타들을 키워냈다. 선이 굵은 유형의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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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투수 조기 강판 등 '독한 야구'를 선보이며 3일 넥센전을 승리로 이끈 LG의 양상문 감독.

두 제갈량이 맞붙은 3일 경기에서는 제갈양상문이 압승을 거뒀다. 양 감독은 4회초 육안으로는 거의 구분이 어려웠던 1루 접전 상황에서 정확한 챌린지로 멋지게 아웃카운트를 이끌어냈다. 또 10승 등극을 앞뒀던 에이스 리오단을 과감히 5회에 끌어내리고, 오랫동안의 휴식으로 힘이 남아도는 불펜을 조기 가동해 승리를 매조졌다. 반면 염 감독은 딱히 도드라진 전술을 보이지 못했다. 내는 작전도 대부분 실패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부진했던 선발 벤 헤켄을 6회에도 올려 추가점의 빌미를 내줬다. 염갈량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기 전 트윈스는 히어로즈에게 속칭 ‘호구를 잡힌’ 팀이었다. 매년 치고 올라가야 할 대목에서 히어로즈에게 발목을 잡혀 고전을 했다. 올해에도 3일 시합 전까지 트윈스는 넥센에게 8번을 지고 고작 5번을 이겼다. 하지만 팬들은 제갈양상문이야말로 이 질긴 악연을 끊을 적임자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그가 부임한 이후 트윈스와 히어로즈의 상대 전적은 4승 4패였고, 3일 승리로 마침내 5승 4패로 역전시켰다.

이날 베어스마저 패하면서 트윈스의 4강행 가능성이 한 층 높아졌다. 최종 결과야 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트윈스의 팬으로서 참으로 꿈만 같은 결과다. 리그 꼴찌였던 팀을 맡아 여기까지 끌고 온 ‘제갈양상문’ 감독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수은중독 :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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