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설문조사…상인들 78% "피해 실감"
젠트리피케이션이 공론화된지 5년. 상인들의 걱정은 많이 줄었을까.

서울시가 최근 내부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인들의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젠트피리케이션 피해를 체감하는 임차인의 수는 10명 중 약 8명 꼴이다. 여전히 임대료 인상은 해결되지 않은 숙제이다. 임대료 인상과 관련해 '권리금 인정'에 대해 임차인과 임대인은 모두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주민협의체'나 '분쟁조정기구' 등 협의체 만들어 해결하는 방식에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임차인들은 협의체 구성을 강하게 원하지만, 임대인들의 선호도는 높지 않았다.

헤럴드경제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실태 조사 및 분석(2019년 12월 보고서·한성대학교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용역)'에는, 지난해 10월부터 11월 사이 진행된 주요 젠트리피케이션 지역 임차임과 임대인 각각 5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별도로 대화형 인터뷰 30명도 진행)가 담겨있다. 이들 인터뷰 대상자들은 마포구, 용산구, 종로구 일대에서 5년 이상 장사를 한, 얼마 남지 않은 상점 주인들이다.
상인 78%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실감"

5년 이상 영업한 상점 주인(임차인) 50명 중 78%(39명)은 우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피해를 실감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젠트피케이션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12명이 '임대료', 4명이 '상점 약화'를 거론했다. 상권이 후퇴하는 것보다 '임대료 인상'이 '둥지 내몰림'을 더 자극하는 요인이란 평가다.

임차인 50명 중 41%(21명)는 30대 청년 장사꾼들이다. 주로 마포구(14명)와 용산구(15명)에 거주하면서, 카페(10명)·주류(7명)·요식업(7명) 사업을 하고 있었다.
임차인 39명 중 18명 "최근 재계약시 임대료 인상 요구받아"

임차인 39명 중 18명은 최근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 인상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약 의사를 가진 28명 중 12명은 '단골손님이 확보됐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임대인 24명 중 3명은 재계약 과정에서 임대료를 최근에 인하시켰다고 답변했는데 이들의 대답이 흥미롭다. 이들 모두 "해당 지역의 임대료가 하락했기 때문에 계약 갱신당시 임대료가 인하된 것"이라고 했다. 해당 지역의 임대료를 낮추지 않은 한 임대인들의 자발적인 임대료 하락을 기대하긴 어려웠던 셈이다.

임차인·임대인 모두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불신

법적 안정망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임차인은 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도(개정된 내용도 인식) '임차인을 위한 법안이라는 인식'은 별로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만을 위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보통'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가장 높았다.

임대인의 경우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불신이 컸다. 설문에 응한 26명 중 10명은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임차인만을 위하고 있다"고 했다. 26명 중 14명은 선호하지 않는 법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임차인·임대인 '권리금 인정' 대안에 뜻 일치

'임대료 상승'은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의 방아쇠와도 같다. 한성대학교 측 인터뷰에 따르면 임차인들은 '신규 임대인 유입'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이들과 세든 상점 주인 사이에 임대료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성대학교 측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거론된 젠트리피케이션 개선 대안들에 대한 임차인·임대인 각각의 선호도를 조사했다. ▷임대료 인상률 조정 ▷프랜차이즈로 인한 상권 동일화 현상 방지 ▷권리금 인정 ▷재계약청구권 연장 및 강화 ▷건물관리 유지 보수 위한 세제 지원 ▷법률상담 ▷지역자산을 공동체 발전 목표로 삼기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정보공개와 교육 ▷임대인·임차인 위한 주민협의체 구성 ▷분쟁조정기구 운영 ▷지역사회 역량 개발 및 리더 양성 ▷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캠페인 ▷지역 정체성 확보 위한 홍보 ▷공인중개사의 공정한 중개 등 14가지가 그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않다, 보통이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 중 원하는 부분을 체크하도록 했다.

그 결과, ▷권리금 인정 ▷공인중개사의 공정한 중개 측면에서 임차인과 임대인은 모두 강한 선호를 보였다. '권리금 인정'에 대해 임차인(41명 중 21명)과 임대인(38명 중 20명)이 '그렇다, 매우 그렇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권리금 문제'가 화두가 되는 건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해당 점포에 대한 권리금 없이 기존 임대료의 2~3배 지불하는 조건을 내세워 입점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권리금은 임차인의 재산이라는 사실이 명시돼 있으나 예외사항이 많다. 계약기간 초과시 보장받을 수 없다는 맹점을 있어, 권리금을 못받고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인터뷰에 응한 임차인들은 "임차인 간에 수수하는 권리금을 건물주가 가로채거나 임차인의 권리금 수수가 막히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공정한 중개'도 임차인·임대인 모두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항이다. 임차인(39명 중 31명), 임대인(26명 중 21명) 모두 '그렇다, 매우 그렇다'는 의견을 내놨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임대인과 접촉하여 건물 매매나 리모델링을 권유하는 일이 잦다는 데 문제의식이 있었다. 건물 매매와 인테리어가 진행되면서 임대료가 오른다. 또 리모델링을 통한 점포 쪼개기가 진행되면, 여기저기 유사한 가게가 늘어 해당 지역 상권이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편 상생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는 데에는, 임차인과 임대인의 입장이 달랐다. 임차인들은 주민협의체가 분쟁조정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을 모두 '그렇다, 매우 그렇다' 수준으로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임대인들은 다수가 '보통' 수준으로 원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지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