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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뷰]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또 유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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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이갈리아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패션쇼의 런웨이 같은 무대 위를 가득 채운 건 이갈리아의 사람들이다. 바지 정장을 입은 여자들은 확신에 찬 무게 있는 걸음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즐긴다. 반면 남자들은 몸에 붙는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몸에는 늘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다.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7년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을 김수정 연출이 각색한 작품이다. 극은 가부장제가 가모장제로 전복된 사회를 상상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성(性)을 전복하면서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스러움을 모조리 담아냈다.

이갈리아에서는 여자가 사회활동을 하고, 남자들은 육아를 전담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갈리아의 모든 언어도 생물학적 여성을 기준으로 탄생됐다. 다만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원작이 가진 언어 체계를 한국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환했다. 메이드맨의 무도회는 ‘소년들의 무도회’로, 페호는 ‘좆브라’로, 맨움해방주의는 ‘남성해방주의’ 등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각각 여성과 남성을 일컫는 움(wom)과 맨움(man/wom)이라는 개념어는 각각 여자와 남자라는 직관적인 단어로 대체됐다. 연극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바로 피부에 스며들 수 있는 힘이 여기에 있다.

극의 1부에서는 차별을, 2부에서는 차이를 이야기한다. 인물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남성들이 차별을 인지하기 시작하고, 2부에서는 ‘차별’을 ‘차이’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특히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성과 권력에 관련된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극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투 운동, 노브라 논쟁, 강간, 성폭행, 데이트 폭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들이 대거 녹아들었지만 마냥 불편하고 불쾌하진 않다. 적절히 배치된 위트 있는 대사들 덕분이다.

각색하면서 만들어진 ‘가이드’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가이드는 극과 거리를 두면서 관객과 함께 이갈리아를 바라본다. 때로는 학생으로, 때로는 발 마사지를 해주는 도우미나 출산 의식을 진행하는 사제 역할을 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을 무대 위 각 집안의 갈등 한가운데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필요 시 가이드는 이갈리아의 남자 혹은 여자를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여성성과 남성성은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역할놀이의 일부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극중 한 인물은 “선생님, 정말 답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가 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한다. 온통 이 시대의 논쟁거리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현실로 돌아갈 관객들에게 한 마디 말을 남긴다.

“새로운 세상은 없다. 새롭게 사는 방법만 있을 뿐이다”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10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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