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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 권하는 TV] ①술 취한 방송가, 이대로 괜찮나?
2013년 ‘꽃보다 할배’에 당당하게 술병이 등장했다. 전국민을 매료시킨 할배들은 여행의 피로를 녹일 겸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술잔을 기울였다. 당시 방송을 보다 ‘어? 저렇게 대놓고 술을 마셔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5년, 방송의 음주장면은 예능에서 일상적 장면이 된 모양새다. 일부 드라마에서는 현실을 반영하려는 의도인지 다소 폭력적인 음주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그러고 보면 음주 장면은 이전에도 금지된 규제 대상은 아니었다. 주류 광고 정도만이 경고문구, 방영시간 등에 대한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차츰 빈도 수가 많아진 음주 장면에 대해 복지부 및 방송심의위 등이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 대한 방송가의 응답은 뜨뜻미지근하다. 음주 장면 규제는 당국의 과한 우려일까, 방송가의 안일함인걸까. 음주 장면의 악영향은 무엇인지, 방송가는 어째서 음주 장면을 하나의 장치로 활용하려 하는지, 적절한 정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살펴봤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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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KBS2 방송화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지난 8일,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 연출 곽승영 PD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자체 심의를 통해 최대한 음주 장면은 편집을 했다”며 “음주 조장, 미화했다는 것은 인정하는 입장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음주 아이템을 줄이고 있다. ‘미우새’ 팀 자체적으로 김건모 씨 아이템에서 술을 가급적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미운 우리 새끼’가 건전성(방송심의규정 제 28조), 수용수준(제 44조 2항), 광고효과(제 46조 1항 1호) 위반했다고 판단한 데 따른 의견진술이었다.

이를 두고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고무적이란 입장을 보였다. 심의위가 법정 제재인 경고를 의결하며 행정이 아닌 제재조치를 했다는 점, 제작진 역시 음주 조장을 인정했다는 점은 방송의 무분별한 음주 장면 난무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준다.

문제는 산적해 있다. 그간 방심위가 조기대선, 여야 추천수 다툼 등 격랑을 헤쳐오며 정비하는 시간 동안 공백으로 자유로워진 방송가에서 주 장면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음주가 주가 되는 프로그램까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방심위는 지난해 6월 12일자로 3기 심의 위원회 임기가 만료된 후 7개월 가량의 공백을 거쳐 2018년 1월 4기 위원회를 구성했다. 방심위는 위원회 공백기간 동안 음주장면을 비롯해 문제되는 프로그램 및 장면 등 사안을 정리해뒀고 이에 대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방심위가 제재하고 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규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도 규제 정립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쪽에선 부르짖고, 한쪽에선 나몰라라 하는 듯한 양상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보건당국이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빈번하게 음주장면을 내보내는 것에 대해 규제를 권고한 바 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시점, 달라진 점은? 딱히 없어 보인다. 여전히 ‘과하다 싶은’ 음주 장면은 드라마 곳곳에 나온다. 예능은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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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MBC, SBS 방송화면)


■ 음주장면 1.2배~3.8배 증가, 리얼리티가 부추겼나?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MBC ‘나 혼자 산다’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 어부’ SBS ‘미운 우리새끼’ tvN ‘인생술집’ JTBC ‘냉장고를 부탁해’ tvN ‘윤식당2’ 등은 술이 자주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아예 타이틀롤이 술이 된 ‘인생술집’을 제외하고는 음주나 반주 장면이 등장하지 않아도 될 법하지만 매회 술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들보다 빈도수는 적더라도 타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상에서도 음주 장면은 많이 등장한다.

단순히 시청자 체감상 음주 장면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지난해 11월 지난 11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통계 자료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청소년 시청률 상위권 프로그램에서 편당 거의 한 번씩 음주장면이 등장했다. 2016년도에 비해 2017년도에는 드라마에서는 평균 1.1~1.3회, 예능에서는 0.2~0.3회로 음주 장면이 증가한 추세를 보였다. 지상파 드라마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적게는 1.2배에서 많게는 3.8배까지 음주장면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왜 방송가는 과거에 비해 잦은 빈도수로 음주 장면을 시청자들 앞에 펼쳐놓는 걸까. 이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출연자들의 대화나 행동 등에 대해 날 것의, 자연스러운 내용을 전달하려는 트렌드가 음주 장면의 빈도수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출연자들이 친해지고 돈독해지는 과정, 좀 더 친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대화 등 음주를 이유로 빼기엔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또 음주를 할 경우 출연진이 더 진솔한 대화를 하거나 속내를 꺼내는 부분도 많다. 그런 부분이 재미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좀 더 생생한 현장감과 재미 등을 위해 음주 장면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주류회사의 협찬도 한 몫 한다. 또다른 방송 관계자는 “간접광고(PPL)로 주류를 광고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하지만 드라마나 예능 등에서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소품 정도로 이용되는 정도는 주류회사도 가능하다. 이를 노리고 주류회사가 제작 협찬을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일례로 G맥주가 최근 ‘신서유기’의 ‘강식당’을 협찬했다. 이런 식으로 주류회사가 협찬 등에 포함될 경우는 아무래도 음주 장면이 잦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주류회사 협찬은 합법이지만 제품이 노출되며 시청자 음주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한다면 제도의 사각지대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사도 협찬을 받아 프로그램을 꾸려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수익적 측면 등을 고려했을 때 반가운 고객이지 거부해야 할 협찬사는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이 사정을 방심위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방심위 방송심의기획팀 안기섭 과장은 “위원들이 음주 장면에 대한 문제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다”면서 “그간 예능 등 프로그램의 음주 장면을 두고 자연스러움 때문에 맥락 등을 감안해온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인식을 하고 있다. 특히 음주 장면에 대해 전반적으로 건의되는 제재 수위도 높은 편이다. 이전에 행정지도를 했음에도 재미만 추구하며 시정되지 않는 부분들을 감안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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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복지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 음주 장면, 시청자 음주 횟수에 직·간접 영향

방송의 음주 장면은 정말 규제의 대상일까. 최근 보건 당국 및 단체, 기관들의 방송 음주 장면 규제 목소리에 일각에서는 음주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음주장면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의 설명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송선미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복지부가 조사한 결과가 있다. 음주장면이나 주류 마케팅에 접하는 빈도수가 많을수록 청소년의 경우 술을 마실 위험성이 더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음주 장면이 영향력이 없다는 말들이 많은데 노출에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017년 10월부터 12월까지 전국 5개 광역시도 청소년 104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음주 장면 노출 매체 수가 1개 늘어날 때마다 30일 내에 음주할 가능성이 1.15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음주장면에 노출된 매체수가 많을수록 음주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음주에 대한 긍정적 기대는 청소년의 음주 여부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조사 결과다. 결과적으로 음주장면 노출이 음주에 대한 긍정적 기대 증가를 부르고 이것이 음주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08년 한국알코올과학회지 제 9권 제 2호에 기재된 삼육대 보건관리학자(천성수, 김주리, Grace Percoheles)들의 논문 ‘방송오락매체가 음주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드라마 속 음주장면을 보면서 음주하고 싶었던 적 있다는 비율이 남성 26.9%, 여성은 39.2%로 나타났으며 청소년(13세~18세)이 드라마의 음주 장면을 보면서 음주하고 싶다 느낀 비율이 15.7%에 달한다면서 음주 장면이 청소년 음주행위를 조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한 바 있다.

또 한가지, 드라마나 예능이 술을 조명하는 방식이다. 드라마 속 폭음, 원샷, 폭탄주 등 위험 음주 장면도 문제로 떠오른다. 복지부가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의 전체 음주장면에서 음주 후 문제행동을 표현한 비율은 25.2%에 달한다. 이러한 묘사는 공공질서를 해치고 불법행위를 미화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예능프로그램의 경우는 전체 음주장면 34.6%에서 술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며 음주를 미화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분명한 건 이같은 장면들이 시청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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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막돼먹은영애씨' 방송장면)


■ 음주에는 유독 관대한 사회

이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는 물론이고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하고 구체적인 음주 장면 규제가 확립되는 것이 우선 과제로 꼽힌다.

우선, 한국 사회가 음주 지향적이고 관대하다는 점이 음주 규제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핀다. 가장 비교하기 쉬운 대상이 바로 담배다. 현재 TV에서는 흡연 장면을 금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CG 처리해 방송된다. 하지만 음주 장면은 이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음주와 흡연 장면에 대해 방심위가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방심위는 흡연과 음주 모두 심의규정 제28조로 다룬다. ‘방송은 음주, 흡연, 사행행위, 사치 및 낭비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같은 규정, 다른 적용의 결정적 예다.

이에 대해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송 부연구위원은 “음주는 흡연과 성격이 다른 측면이 있다. 흡연은 권장 해결책이 금연이지만 음주는 금주가 아닌 절주를 권한다”고 실질적으로 음주 규제를 흡연처럼 다루긴 힘든 점이 있다고 밝혔다.

관대한 시선도 한 몫 한다. 음주 장면 규제를 부르짖는 기관 및 단체들이 당장의 규제보다 가이드라인 권고에 주력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사실 집안에서만 해도 자연스럽게 반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어른들이 술을 권하지 않나. 회사는 어떠냐. 회사 생활 태반이 음주인 곳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술자리가 회식의 주가 되는 사회다. 대학생도, 친구들끼리의 사적 만남도 술이 빠지면 허전할 정도인 게 바로 한국 사회다”면서 “이런 사회에서 마냥 음주 장면은 나쁘다만 외친다고 해서는 방송가도, 시청자들도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쌓아갈 방침이다.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들 위주로 음주 장면이 등장하는 횟수라든지, 시청자들이 음주 장면을 보고 음주 욕구를 느끼는지 등 설문을 통해 점차적인 변화를 꾀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술 권하는 TV] ①취한 방송가, 이대로 괜찮나?
[술 권하는 TV] ②술 권하는 사회, 현실적 접근이 절실한 이유
[술 권하는 TV] ③방송 규제 '논란의 역사'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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