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문다영의 읽다가] 판사는 국민 법 감정을 모르는 사람일까
이미지중앙

(사진=영화 '보통사람' 스틸컷)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과 촛불 정국을 지나오면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대체 누구냐’ 싶은 이름들의 등장. 눌러보면 아무개 판사들의 이름이다. 판사들의 이름은 왜 올라왔을까. 여지없이 그날 영장기각, 혹은 구속을 당한 주요 인물들의 사건을 맡은 담당 판사들이다. 온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영장실질심사가 기각되면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전담 판사는 하루 종일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린다. 다음의 주요인물 혹은 지난 사건과 연관돼 더 많은 파장을 낳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연히 구속이 마땅할 것만 같은 이들의 영장실질심사가 기각되는 현상에 대해 물어보면 법조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 검찰이 증거와 혐의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담당 판사로서는 철저히 법리적 판단으로 구속과 기각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이 느끼는 온도차는 크다. 여론이 들끓는 사건일수록 법리에 기반한 ‘기각’은 반전이 되고, 기각을 판단한 판사는 배신자로 취급당하고 만다. 첫 번째 영장실질심사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보완돼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이 결정되어도 첫 번째의 판사는 공공의 적이 되고 두 번째의 판사는 의인이라는 말을 듣는다.

일부는 국민 법 감정을 거슬렀다며 적폐를 외치고 일부는 “대체 판사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까지 한다. 이를 두고 글 잘 쓰는 문유석 판사는 한 일간지 기고글을 통해 “법원은 누구 편 선수도 아니고 그냥 룰대로 심판 보는 심판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글 역시 동의할 수 없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여전히 다수의 바람을 저버리는 것만 같은 판결에는 판사에 대한 욕이 뒤따른다. 이들의 말처럼 정말 판사는 보통의 사람이 가진 심장이 아닌 강철 심장을 가진 걸까? 사회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들인 걸까.
이미지중앙

(사진='개인주의자 선언' 책표지)


역시 글 잘 쓰는 문유석 판사는 판사들 역시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한민국 판사인 동시에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벌써 책을 네 권이나 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은 사회 전반적인 부분들을 바라보는 판사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각을 담고 있다. 2014년도에 낸 ‘판사유감’이 판사로서 느끼는 시각을 담아냈다면 ‘개인주의자 선언’은 판사인 동시에 직장인이자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자식인 문유석이 느끼는 바까지 담고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인간미가 물씬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솔직하게 자신의 성향을 밝히고 시작한다. 불필요한 사람과의 접촉이나 간섭이 싫다는 그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상담원의 인사에도 “왜요?”라 반문하고 싶은 사람이다. 특히 그는 개인주의가 필요한 시대라면서 개인주의란 이기주의와 달리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유교사상, 군대 등 끈끈한 집단 문화에 얽매어 이 개인주의마저도 이기주의, 배타주의로 여겨진다고 일침한다. 동시에 저자는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무엇보다 법복을 입은 판사 역시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故 신해철을 개인주의자로 생각한 이유를 비롯해 자기계발 신화에 중독된 사회,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 가족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 사람들이 SNS에 글을 쓰는 이유, 흉기가 되는 말 등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면면들에 대해 솔직하고 가감없는 감정들을 드러낸다. 지하철에서 양 옆에 사람이 앉는 것조차 싫지만 사회와 함께 하는 행복을 흐뭇해하고 사회 이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료와 주변인을 이야기하며 뿌듯해한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면 마일리지가 쌓여 아이스크림과 교환 가능한 미래화폐제도를 상상하는 판사 문유석은 더없이 이상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사회를 주장하는 저자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월호를 언급하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험한 세상에서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마지막 문장도 인상깊다.
이미지중앙

(사진=SBS 방송화면)


동시에 판사로서 사회적 법리적 불합리에 안타까워하는 지점들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는 주택경매 붐이 일었던 당시 투자자와 깡통주택 피해자라는 정반대 입장의 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현실에 착잡해한다. 당연히 무죄인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재심을 맡았다가 정해진 법리 때문에 억울함을 완전히 털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도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기사 딸린 차를 탄다는 사실을 전하며 퇴직 후 낡은 자동차를 타면 청렴이 아닌 위상 추락이라 보는 사회에 한탄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판사도 당연히 똑같은 사람이고 비슷한 지점에서 분노하고 비슷한 생각들을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 사실에 반갑고 공부만 잘했다는 판사가 이토록 ‘잡학’다식하다는 데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게 된다. 에피소드 하나를 넘길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279쪽의 책은 부담없는 크기와 무게다. 목차를 보고 끌리는 지점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그의 대놓고 솔직한 글에 반박도 해보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 보면 좋든 싫든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할 기회를 갖게 된다.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