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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 잇 수다] '교도소 체험' 예능, 전제부터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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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종 PD, 제영재 PD(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시작부터가 틀렸다. 사법 시스템 작동 원리와 ‘착하게 살자’는 말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교도소의 리얼함을 일깨워주며 ‘사법 시스템이 이러이러하니 우리 모두 죄 짓고 살지 맙시다’하는 교훈이라도 주려는 걸까.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MBC ‘진짜 사나이’ 연출을 맡았던 김민종 PD와 ‘무한도전’ 제영제 PD가 손을 잡고 새 예능프로그램 ‘착하게 살자’를 론칭한다. 이 예능은 ‘교도소 체험 예능’이라고 먼저 알려지며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제작진은 이를 두고 ‘단순한 체험’은 아니라고 말한다. 프로그램 설명에는 ‘구속부터 재판, 수감까지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는 일련의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국내 최초 사법 리얼리티’라고 쓰여 있다. 제작진 역시 “교정 공무원들의 노고를 심도 있게 다루고, ‘죄를 짓지 말자’는 공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면서 취지를 밝혔다.

범죄 미화의 우려에 대해서도 “프로그램 만드는 초반부터 주의한 지점이다. 단순 체험이 아닌 사법 시스템 작동 원리를 리얼하게 팔로우하며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굳이 예능을 보며 ‘죄 짓지 말자’는 깨달음?
프로그램 취지부터가 이해하기 어렵다. ‘착하게 살자’는 도덕 교과서가 아닌 예능프로그램이다. 교도소라는 공간과 예능이라는 포맷은 신선한 만남이 아니라, 개념부터가 다른 두 요소를 끼워 맞춘 모양새다.

우리는 모두 나쁜 행동이 무엇인지 어린 시절부터 학습한다.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말기, 빨간 불일 때 길 건너지 말기부터 시작해 사기, 절도, 음주운전, 살인 등은 살아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걸 누구나 안다. 그런 시청자들이 굳이 범죄자들이 어떻게 구속되고 재판을 받으며 수감되는지 지켜보며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걸까?

오히려 시청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간다는 생각까지 들어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죄를 짓지 말자’는 메시지는 전제가 잘못됐다. 법을 다룬 공익예능을 꿈꿨다면 차라리 프로그램의 주체를 시청자가 아닌, 각 직업군으로 설정했어야 한다. 교정 공무원들의 노고를 다룰 의도라면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직업을 조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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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슬기로운 감빵생활' 화면 캡처)



■ ‘교도소 다룬’ 드라마와 예능의 차이
안 그래도 법정을 벗어나 교도소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생겨나 시청자들의 촉각이 예민하다. 교도소라는 공간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이 실제 폭력성으로 이어질 위험성에 나이 제한을 두고,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강력범죄의 적나라한 보도를 지양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조금이나마 드라마에서 용인이 되는 이유는 ‘스토리’ 때문이다. 드라마는 수많은 이야기가 집약된 작품이기에 맥락이 존재한다. 연속된 이야기로 충분한 이해를 도울 수 있고 무거운 흐름과 맞물려 진지하게 다뤄질 수도 있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계속해서 교도소를 설명하고 엄숙하고 현실적인 곳으로 비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SBS ‘의문의 일승’에서는 일반 수감자와 사형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사형수가 마음대로 밖에 드나든다. 교도소 내에서 불까지 사용한다. 스토리에 교도소라는 요소를 녹인 게 아니라, 스토리를 위해 ‘이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치명타다. 충분한 이해가 없는 장면이기에 거센 비판이 뒤따랐다.

예능프로그램이 이와 같다. 아무리 깊숙이 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예능프로그램은 단편적으로 비춰지는 포맷이기 때문에 그 한계는 더욱 크다. 제작진이 맥락을 담아낸다고 한들 받아들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미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의 인지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교도소는 결코 가벼운 곳도 아니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더욱 안 되는 시설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린 이들이 그 죗값을 치르는 곳이다.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교도소는 분명 ‘체험’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웃음이 주인 예능과도 결코 어울릴 수 없다. '어떻게 구성하냐'를 떠나 이미 예능과 교도소의 접목 자체가 범죄미화다.

누구도 생각 못했던 군대를 예능 아이템으로 삼아 (탈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 인식 개선을 도왔던 김민종 PD다. 참신한 시도로 호평을 받는 ‘무한도전’을 맡았던 제영제 PD다. 두 사람의 조합이라면 프로그램을 허투루 만들지 않을 거란 신뢰는 있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다. ‘착하게 살자’라는 제목과 달리 프로그램이 가져올 파급은 전혀 착하지가 않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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