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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기자 Pick] 가혹한 운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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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포르투갈의 높은 산' 책표지)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운명이 참으로 가혹할 때가 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러느냐”고 부르짖어봤자 운명의 바퀴는 돌아가고 하늘은 묵묵부답일 때가 많다. 크든 작든 참혹한 자신의 운명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맨부커상 수상 작가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 이후 15년 만에 내놓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통해 세 남자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한다. 상실으로부터 시작되는 세 남자의 이야기는 1904년부터 1981년까지 포르투갈과 캐나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 세기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 동안의 인간사는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술적 리얼리즘에 덧입혀지면서 괴이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1904년 리스본. 일주일 만에 아버지와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게 된 토마스는 신에게 대항하듯 1년 째 뒤로 걷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날 고문서에서 기독교를 뒤집을만한 기이한 십자고상 기록을 발견하고는 신을 향한 복수를 다짐한다.

1938년, 포르투갈에 사는 부검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에게는 한 노부인이 찾아온다.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들고 먼 길을 달려와 부검을 의뢰한다. 부검을 통해 남편이 왜 죽었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부인의 지시대로 부검을 진행하고 예기치 않은 미스터리에 맞닥뜨린다.

1981년, 상원의원 피터는 40년간 함께해온 아내의 상실을 겪은 후 큰 슬픔에 빠져 있다. 직책도, 집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버리고 포르투갈 북부에 자리한 고향 마을 투이젤루로 찾아간 그의 옆에는 평범하지 않은 동반자 침팬지 오도가 함께한다. 피터는 오도와 지내면서 과거와 미래, 회한과 미련 속을 맴도는 인간 종인 자신과 달리 오로지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하고, 감정의 찌꺼기 따윈 없으며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오도라는 존재에 매혹 당한다.

‘파이 이야기’가 극한의 상황에서 역경을 딛고 신과 믿음에 대한 참된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해가는 한 소년의 모험기를 그렸다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참혹한 운명 앞에 마주한 세 남자가 이를 다시 회복해나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각 부마다 한 편의 완성된 소설로 읽히는 세 이야기 속 인물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포르투갈, 침팬지, 여행이라는 운명적 모티프를 통해 서로 깊숙이 연관돼 있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서사를 따라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자리하고 있는 혼란한 상실의 세계 속, 존재의 미스터리에 담긴 놀라운 비밀이 점차 해소되는 구성도 흥미진진하다. 이 작품은 그동안 저자가 일간되게 천착해온 주제들, 신과 믿음,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 진실과 허구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얀 마텔 지음 |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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