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책 잇 수다] '군함도' '택시운전사'보다 더 깊이, 더 치열하게…역사를 품다
이미지중앙

영화 '택시운전사'와 '군함도' 포스터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역사 속 아픔을 담은 대작 영화는 폭염마저 제쳤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일제 강점기 하시마섬 강제징용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군함도’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외신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는 택시운전사를 통해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택시운전사’가 영화계 기록을 갈아치울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편에선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모두 역사적 진실을 담아내는 데 역부족이었다는 혹평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실제 역사를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하다. 영화는 실화가 큰 힘을 발휘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영화보다 방대하고 섬세하고 스펙터클하게 역사를 담아낸 책들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영화 흥행의 힘을 빌어, 영화보다 더 생생한, 역사의 아픔을 담은 책들을 소개한다.

이미지중앙

강풀의 '26년' 전두환 '전두환 회고록' 책표지


■ ‘26년’ vs ‘전두환 회고록’이 담은 5·18 민주화운동, 끊이지 않는 논란

영화 ‘택시 운전사’ 전 영화 ‘화려한 휴가’ ‘26년’ ‘꽃잎’이 있었다. 문학계에는 아주 다양한 책들이 당시의 참상과 남은 이들의 아픔을 그려왔다. 그 중에서도 영화 ‘26년’의 원작인 강풀의 ‘26년’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두환 회고록’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과 논란을 불렀던 책이다.

강풀의 웹툰 ‘26년’(재미주의)은 5·18로부터 26년 후의 일을 그린다.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김갑세 회장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당시 피해자들의 남은 가족을 모아 전직 대통령인 ‘그’에게의 복수를 도모한다. ‘그’에게 다가가는 동안 살아남아 살아야 했던 자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마지막 순간, 사격선수 출신인 심미진의 총구는 ‘그’에게 향한다. 연재 내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청어람에서 이 만화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 이해영 감독이 '29년'이라는 가제로 시나리오작업을 진행, 캐스팅을 마쳤지만 크랭크인 직전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무산된 배경에는 ‘외압이 있었다고 본다’ 는 제작사 대표의 인터뷰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2012년 4월, 11월 개봉을 목표로 다시 영화 제작이 추진됐고 진구 한혜진 이경영 등이 캐스팅됐다. 투자자가 없어 크라우딩 펀딩이 도입됐고, 크라우딩 펀딩이 합법적 절차로 인정받으면서 수차례 무산됐던 영화 ‘26년’은 결국 시민들의 힘으로 탄생했다. 일반시민들로부터 후원받은 금액이 7억원에 달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두환 회고록’(자작나무숲)은 다른 의미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발간한 3권짜리 회고록에서 “5·18은 ‘폭동’ 외에 표현할 말이 없다”, “나는 광주 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 “5·18 학살도, 발포명령도 없었다” 등 표현으로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5·18기념재단 측은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광주지방법원은 4일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5·18기념재단 등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33곳을 모두 삭제하지 않고서는 회고록을 출판하거나 발행·판매·배포·광고를 불허했다. 전 전 대통령과 출판사 대표인 전 전 대통령의 아들 제국씨는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1회당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자 전 전 대통령 측은 “회고록에 대한 법원의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불복한다”며 이의신청할 뜻을 밝혔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영화 ‘택시운전사’ 개봉 후 영화에 악의적인 왜곡이나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전화 통화에서 “‘택시운전사’ 장면 중 계엄군이 시위를 벌이는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다. 당시 계엄군들이 먼저 공격을 받아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 날의 진실을 아는 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편 2007년 ‘화려한 휴가’ 개봉 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 피해 보상 소송 준비를 한 바 있다. 당시 영화 제작사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는 “오히려 법정에 가면 최후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미지중앙

한강 '소년이 온다'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창비)도 있다. 책의 초판이 출간된 1985년은 5·18항쟁 가해자인 신군부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였다. 필자들은 가해자인 신군부, 피해자인 광주시민, 그리고 관찰자인 기자와 선교사 등 항쟁 관련자 가운데 한 축이었던 피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당시까지 생산된 각종 유인물과 입수 가능한 재판기록 등 한정된 자료만을 토대로 집필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권의 엄혹한 감시 속에서도 불구하고 항쟁 5주년에 맞춰 출간, 대학가 서점에서 소리소문 없이 팔려 나가는 ‘지하 베스트셀러’가 됐다. 32년만의 개정판에서는 최근까지 공개된 5·18 당시 계엄군의 군사작전 내용과 5·18 관련 재판 결과를 반영해 역사적·법률적 성격을 규명하는 데도 애썼다.

이미지중앙

최규석 '100℃ '



■ 그리고 … 또다른 민주항쟁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가제)이 제작 중이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이 출연하는 ‘1987’은 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6월 민주항쟁을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책으로는 최규석 작가의 ‘100℃’(창비)가 있다. 최규석 작가는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작업을 제안받아 이 만화를 그렸고 이 책은 2008년부터 전국 중·고등학교에 현대사 수업 보충교재로 배포됐다. 제대로 된 진실을 알 수 있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규석 작가는 녹록지 않은 작업을 수락했다고 한다.

‘100℃’는 고지식한 대학생 영호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광주민주항쟁에 대해 알게 되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겪으면서 진지하게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운동을 안 하자니 양심에 찔리고 하자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는 85학번 새내기 영호를 중심인물로 내세워 6·10 민주항쟁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훑는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를 외치며 공장으로 들어가고 거리로 나섰던 영호의 친구들, 데모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믿었지만 ‘북괴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는 말이 실은 군부 정권의 억압과 탄압의 도구였다는 것을 알고 ‘각성’하게 되는 영호 부모님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서사에 녹아들어 있다. 1987년 1월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10일 범국민대회 하루 전날의 시위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에 대한 상징적 순간들도 빠짐없이 담겨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이미지중앙

한수산 '군함도' 김영숙 '지옥의 섬 군함도'


■ 논란 속 흥행 ‘군함도’ 당신도 아쉬웠다면…

영화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의 의도가 뚜렷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로라도 당시 강제 징용자들의 통한과 울분을 풀어주겠다는 의지가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영화는 오락성이 짙어지고 말았다. 결국 하시마 섬 강제 징용자들의 아픔을 제대로 다뤄주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혹자는 “창작물이라지만 역사를 빌려 쓰며 그 역사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고도 표현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언론이 ‘군함도’에 대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담지 않았다” “정치적 호소가 강한 작품”이라는 등 철저한 날조라는 평을 내놓으면서 ‘군함도’에 대한 대중의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문학계가 조명한 하시마섬의 역사는 어떨까.

한수산의 ‘군함도’(창비)는 일제강점기 하시마섬에 징용된 조선인과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희생된 피폭 조선인의 삶을 그린 5권짜리 소설 ‘까마귀’(2003)를 새로 집필해 내놓은 책이다. 우석과 지상은 하시마섬 강제징용자로 살아간다. 탈출을 도모하던 중 우석은 군함도의 유곽에서 일하는 금화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두고 혼자 떠나는 것이 마음 편치 않다. 결국 지상만 탈출에 성공하고 우석은 군함도에 남게 된다. 군함도에서 조선인을 노예처럼 부려먹던 일본인의 행태는 나가사키에서도 반복되며 나가사키 조선인 징용자들은 미국의 원폭 투하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작가가 지난해 두 권으로 펴낸 소설 ‘군함도’는 ‘까마귀’의 원고를 대폭 수정해 원고지 3500매 분량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소설에서도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하시마 탈출이 그려지지만 영화 ‘군함도’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하시마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과 중국인의 기록’(선인)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세 일본인이 직접 모은 정보들을 기록한 책이다. 서정우 김선옥 최장섭 전영식 씨 등 입을 빌어 하시마섬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전하고 중국인의 진술도 함께 담았다. 특히 조선, 중국, 일본 등 각각의 시각에서 본 ‘하시마 자료’를 이야기하고 미쓰비시의 ‘화인노무자 조사보고서’ 기만 등 민감한 문제들을 담았다.

장성자의 ‘군함도’(바우솔)김영숙의 ‘지옥의 섬 군함도’(풀빛)는 모두 군함도를 경험하는 독자 또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다. ‘군함도’는 하시마에 역사수업을 받으러 간 도윤이가 일제강점기로 시간여행을 하는 판타지를 통해 참혹한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 ‘지옥의 섬 군함도’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와 함께 탄광에 끌려간 근태의 일기 형식으로 참상을 되살린 작품이다.

이미지중앙

김영하 '검은 꽃' 조정래 '아리랑'


■ 나라가 없어 흘려야 했던 피와 눈물, 하시마만 지옥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정래의 ‘아리랑’(해냄)에서는 방대한 이야기가 담기지만 하와이 이민초기 한민족의 아픔을 담았다. ‘태백산맥’이 일제 시대부터 6.25 전쟁까지, 분단의 역사를 그렸다면 ‘아리랑’은 일제 침략기부터 해방기까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 그리고 이민사를 그렸다. 빚 20원에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 간 감골댁 아들 방영근부터 만주벌판에서의 힘겨운 삶이 방대한 역사를 품고 펼쳐진다. 하와이 이민이 아닌 사탕수수 농장의 참혹한 삶이 당시 민족의 문드러진 마음을 대변한다.

김영하의 ‘검은 꽃’(문학동네) 영화 ‘애니깽’과 같은 소재다. 김영하는 ‘검은 꽃’에서 일본 꼬임에 넘어가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게 된 한민족의 이민사를 그려냈다. 천민, 몰락양반, 군인, 도망친 신부와 무당 등 다양한 인물군상을 통한 서사에 당시의 참상을 담아냈다. “이것은 국가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아니면 국가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대한제국이 있었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멕시코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 한 문장으로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아픔을 표현했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