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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잇 수다] '첩 자식 같은' 전자책, 그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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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세트=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아직 출판사에서 판매 예정이 없습니다.”

국내 출간과 동시에 40만부를 찍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직 전자책(e북)으로 볼 수가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서점 측은 출판사에서 판매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기사단장 죽이기’ 국내 출간을 담당한 문학동네 담당자는 “전자책 계약 확정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사단장 죽이기’ 바로 직전 같은 출판사에서 히트를 친 다른 책 역시 국내 작가 작품임에도 출간 직후 전자책으로 바로 사볼 수는 없었다. 이에 대해 출판사 측은 "전자책의 경우는 뷰어에 따라서 검수하는 시간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제작까지 1주에서 2주가 소요된다. 편집자가 공을 들여서 비슷하게 맞추지 않는 이상은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는 “종이책 판매량을 위해서 출간 시점에 간격을 둘 때도 있다”고 조금 더 솔직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에서 전자책 판매는 20% 가까이 줄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전자기기를 멀리하려는 현상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전자책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6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체 출판사업 매출은 줄었지만 전자책 판매는 늘었다. 출퇴근 지옥철, 무거운 가방 사정이 이들에게 전자책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도서시장에서 보고 싶은 신간을 곧바로 전자책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앞선 사례처럼 출판사 정책에 따라, 혹은 작가와의 계약 문제 등 다양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혹’하는 신간을 바로 전자책으로 구매할 수 없는 현실은 가격과 질적인 문제로도 이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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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언어의 온도', 백영옥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실체 없는 전자책…왜 비쌀까?

지난해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전자책을 구매한 사람은 모두 34만 명으로 그들이 읽은 책은 모두 430만권에 이르렀다. 제법 큰 시장이지만 전자책 구매자들 사이에서는 전자책 가격이 종이책에 비해 크게 싸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국내 전자책은 출판사에서 특별 할인하거나 아주 오래된 책이 아닌 이상 종이책 정가보다 대략 20% 정도 저렴한 정도다.

실제 지난해부터 꾸준히 히트작인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는 종이책의 경우 온라인 서점에서 1만3800원 정가가 10% 할인된 1만2420원에 판매되고 있고, 전자책은 9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백영옥 작가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종이책 1만6000원 정가가 온라인 서점에서 10% 할인된 1만4400원에, 전자책은 1만28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대략 3000원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전자책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전자책이 종이책처럼 인쇄비나 서점 판매를 위한 유통비가 없음에도 가격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5년 김진명 작가는 전자책으로 출간된 ‘글자전쟁’ ‘싸드’ 등 작품의 판매대금을 받지 않기로 결정해 크게 이슈가 됐다. 김진명 작가가 두 작품 인세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 작품들의 전자책 가격은 절반 가격으로 대폭 할인됐다. 개정 도서정가제로 인해 ‘싸드’는 2500원에 대여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는 작가가 인세를 전액 반납했기에 가능했던,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종이책 대비 전자책 가격 수준이 영국이나 미국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단법인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지난해 미국, 영국, 한국의 대표적 전자책 판매처 5곳씩을 상대로 한 달 베스트셀러 10권의 종이책과 전자책 가격을 비교한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인기책의 전자책 버전은 종이책 가격의 61.5%였고, 영국은 평균 57%, 미국은 전자책 평균 가격이 종이책의 43%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전자책이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흡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종이책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장이었기에 출판사들은 종이책을 사업 확장의 기회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를 갉아먹으면 어떡하지’라는 경계의 대상으로 봤다”면서 “이 때문에 가격 결정에 있어서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전자책 가격은 정립된 게 아니다. 출판사들 사이에서도 전자책 가격을 어느 정도로 책정할 것인기, 도서정가제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정립되지 않았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자책 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여전히 달갑지 않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웹소설 외 일반 단행본 등의 전자책이 빨리 출간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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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탭 A 교보문고 에디션, YES24 크레마 사운드



■ 전자책, 퀄리티의 진실

출판계의 보수적인 시각 탓에 전자책 시장은 해가 갈수록 이용자가 늘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출판 마케팅 협회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기본 전자책 가격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꼭 가격적인 이유만은 아니다”면서 “출판사는 대부분 전자책이 돈이 안 된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이 생각으로 출판사는 종이책 저자들의 전자책 출간을 적극 추천하거나 권유하지 않고 저자들 역시 출판사들의 말을 믿고 전자책 출판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종이책과 전자책의 경우 같은 콘텐츠라도 편집 등 면에서 차별화를 둬야 한다고 본다. 결국 이러한 콘텐츠 퀄리티나 무관심이 결국 전자책 시장 독자의 외면을 불렀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00년 출간된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윤기 편역/창해)의 전자책 버전은 주석이 해당 페이지 아래에 자리하지 않고 다른 페이지에 있다. 독자는 이리저리 페이지를 넘겨가며 주석을 읽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야 한다. 전자 단말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종이책 PDF를 그대로 옮겨놓은 단적인 폐해다.

또 다른 출판업계 관계자 역시 “출판사 입장에선 ‘내가 이 책을 1만5000원에 팔아야 하는데 전자책에선 이렇게 못 파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면서 “사정이 이러니 전자책에 투자하지도 않는다. PDF를 올려놓는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뷰어, 소프트웨어 문제 등도 출판사마다 제각각이다. 실제 우리는 전자책이라기보다는 PDF 파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전자책에서 구현될 수 있는 편리한 기능들이 전자책이라 말할 정도의 기능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출판업계는 아무래도 전자책 시장을 계륵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전자책은 출판사들이 버릴 수는 없는 시장이지만, 주력하기는 싫은 눈치가 역력하다. 그러나 출판사의 보수적 우려와 달리 책 시장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세상이 어찌 변하든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고, 디지털 기기에서 책을 보는 게 훨씬 편하고 수월하다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출판사들은 공격적 마케팅과 시장 확대 대신 애먼 걱정만 하느라 또 하나의 시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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