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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셀러] ②방송이 이끈 찬란한 성공, 그리고 서점가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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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TV 속에서 봤던 그 책, 익숙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소개만으로도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서점가 베스트셀러 자리는 이들의 차지다. 미디어 노출 이후 흥행해 베스트셀러가 된 도서를 일컬어 미디어셀러라 한다. 연간 평균 독서량이 나날이 감소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미디어셀러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김인육이란 시인을 알지 못해도 좋았다. tvN ‘도깨비’에서 공유의 내레이션으로 전해진 이 싯구는, 김고은이 필사하는 매력적인 장면은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책을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방영 당시와 그 후에도 줄곧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이 책은 종영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 부문 베스트셀러 3위에 올라와 있다.

작가나 책이 영화 및 TV, 미디어에 노출되고 대중의 이목을 끈 책들을 미디어셀러라 부른다. 아주 오래 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모모’가 등장하며 2005년 가장 많이 판매됐고 이 책에는 미디어셀러 시초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최근 들어 미디어셀러의 영향은 더욱 커졌다. 작품을 보며 감정이입한 캐릭터가 읽는 책은 어쩐지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재미도 있고 지식도 넘치는 인물이 TV에 등장해 입담을 풀어내면 그의 책들이 궁금해진다. 여기에 더해 동네 서점이 사라지고, 도서관을 찾아갈 열정까지는 없고, 책에 대한 갈증은 있었던 이들이라면 미디어가 알려주고 노출하는 책에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미디어셀러의 꾸준한 성공에 대해 교보문고 측은 “최근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 들어선 많은 책들이 미디어셀러에 속한다”면서 “예전에는 미디어셀러가 강세라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의미도 사라졌다. 요즘은 거의 구분이 없는 일반적인 추세일 정도다. TV나 영화를 비롯해 SNS까지 포함하게 되면 그 구분은 더욱 희미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tvN ‘알쓸신잡’ 김영하나 ‘어쩌다 어른’ 출연자들의 경우는 출판으로만 가능하던 소통을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시청자와 대중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도서시장이 미디어셀러로 인해 확실히 활발해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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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시카고 타자기'



■ 미디어 셀러는 PPL의 결과물?

텍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주 오랜만에 서점을 간 이들이라면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서성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셀러는 한번쯤 관심을 가졌던 인물의 책, 즐겨 본 작품에 등장했다는 것이 다른 책들에 비해 유리하다. 그런데 사실 이 미디어셀러의 미디어 노출에는 똑똑한 전략이 숨어 있다. 바로 PPL(간접광고효과)이다.

tvN ‘시카고 타자기’에 등장한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드라마 제작사와 출판사 갤리온이 간접광고 형태로 계약을 맺고 노출됐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는 문구는 극중 세주에게도, 전생의 서휘영에게도 더없이 적합한 말이었다. 드라마 시청률은 낮았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계속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역시 간접광고로 공개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매출액을 전년 대비 14.2%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형출판사로서는 더없는 기회다. 극중 주인공이 한 문장만 읊어줘도, 손에 들고만 있어도 매출액은 껑충 뛴다. 이는 PPL 업계 중 가장 보수적이란 평을 받았던 출판사를 끌어들였고, 대형 출판사들은 평균 8000만원~1억원 정도의 협찬 금액을 들여 미디어셀러를 탄생시킨다. 업계 관계자는 “방식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면서 “적게는 3000만원 선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과 연관이 있다면 가장 비싼 금액이 책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크릿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등 이전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책을 노출시켜 온 김은숙 작가는 직접 책을 고르는 유형이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출신인 그는 제작지원 제안이 들어온 책부터 그렇지 않은 책까지 고루 읽어보고 내용이 적합한지 판단한 뒤 작품에 들어갈 책을 고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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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알쓸신잡' 출연으로 책 판매에도 일조 중인 김영하의 '오직 두사람'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 미디어 셀러의 명과 암

이전에는 원작 책이 영화화나 드라마화 되는 정도가 책의 가장 큰 성공으로 꼽혔지만 이제는 미디어셀러가 도서 시장을 살리는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미디어셀러의 효과는 크다. 출판업계 한 담당자는 “독서량이 급락하는 요즘 시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흥행 미디어셀러의 등장으로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책에 관심을 가지고 접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도 미디어 셀러 열풍을 출판의 산업화이자 진전이라고 봤다. 책은 스스로 독자에 노출될 수 없기에 미디어라는 장치를 활용하는 것은 진화한 방식이라는 것. 장 대표는 “책의 발견성(독자에 노출)이 한 번 만들어지면 하나의 제품 밖에 못 팔았는데 요즘에는 굉장히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다양한 독자의 취향을 충족하며 니즈(needs)를 맞추고 있다”고 긍정적 효과를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영화나 드라마 등 대중매체에 의존성이 높아지다 보면 출판의 다양성을 해치는 구조가 고착화 된다. 독자가 책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할수록 출판 다양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통로가 치우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저자만 각광받는 현실, 이로 인한 다양한 양서 보급의 어려움 등이 미디어 셀러의 그림자로 지목된다. TV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SNS에서 인기를 얻은 작가를 중심으로 책이 만들어지기 때문. 특히 대형 출판사나 가능한 PPL 전략은 다양성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중소 출판사 죽이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책 자체가 아닌 그냥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책의 내용은 사실 알지 못하고 드라마에 취해서 아니면 예능에 취해서 구입을 하게 된다라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는 김연수 문화 평론가의 말도 미디어셀러 붐에 가려진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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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도깨비'



■ 미디어 셀러만이 답은 아니다

그래서 출판사도, 서점도 절치부심 중이다. 미디어 셀러가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지난 4월 출판사 은행나무, 마음산책, 북스피어 3사는 ‘개봉열독’이란 이름으로 제목, 저자, 표지를 숨긴 포장된 책을 내놨다. 미지의 것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파고든 전략으로 예약 판매 5일만에 각각 1000부 씩을 넘기는 성공을 거뒀다.

그런가 하면 교보문고는 편집샵:K를 인터넷상에 오픈했다. 책은 읽고 싶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를 독자들을 위한 북큐레이션 샵이다. 문장형 추천을 통해 독자들에게 읽어보고 싶은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설문을 통해 책을 선택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3월엔 ‘처음’ 5월엔 ‘청춘’ 7월엔 ‘말vs말’ 등 테마를 정해 매월 책 목록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편집샵:K를 통해 구매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문장이 마음에 들어 장바구니에 넣었다”는 호평이 잇따른다.

개성있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독립 출판물을 유통하는 독립 서점도 증가하는 추세로, 미디어의 인기를 탄 구름 위 책이 아닌 다양한 책과 콘텐츠를 원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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