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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종석 실장 '주사파 논란', 수배 당시 ‘임길동’으로도 불려…주사파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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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임종석 비서실장 주사파 논란 (사진=연합뉴스)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은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임종석 전 의원에 대한 ‘주사파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주사파란 1980년대 중반부터 세력을 떨친 우리나라 운동권 학생들의 일파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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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웠으므로 주사파라고 하며, 한편으로는 북한의 남한혁명노선이라고 하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추종하여 특히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NL파라고도 불렸다.

민족해방, 즉 통일을 지향하면서 당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제5공화국 정부를 타도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많은 학생들의 호응을 받아 그 세력이 한때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북한의 노선에 치중, 동조하여 우리나라가 반봉건사회이며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는 등의 현실 인식은 일반 학생들의 견해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더구나 1986년 10월 건국대학에서 무리하게 애국학생 민족해방 투쟁총연맹(약칭:애학투련)을 결성하려다가 대규모 공권력의 투입에 의해 좌절됨으로써 조직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이듬해인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직선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이 무시되자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를 틈타 주사파 세력은 운동권의 전면에 나서면서 서울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의 학생단체들을 주도하였다.

이 6월 항쟁을 통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 이어 제6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그 뒤로 통일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1989년 7월 평양에서 개최된 한민족 축전에 전대협 대표를 파견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1993년 문민정부 이후 학생운동이 침체하면서 주사파의 활동 역시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1995년 박홍 서강대 총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주사파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킴에 따라 다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그러나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몰락과 김일성의 사망, 학생운동의 위축 등으로 그 존재가 이미 미미해진 상태였다.

임종석 실장에 대해 자유한국당 등이 반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임종석 실장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지낸 정통 주사파로 알려져 있다. 1989년 임수경 전 의원 방북 사건을 진두지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6개월간 복역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경찰 수배 당시 체포 현장을 교묘하게 빠져나갔다는 이유로 ‘임길동’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10일 임종석 전 의원 비서실장 임명과 관련해 "임종석 실장은 관용적인 성품을 갖춘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정과정을 중요시한다"며 "대화와 토론, 격의 없는 소통과 탈권위의 청와대 문화를 이끌 적임자"라고 말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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