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영화 ‘싱글라이더’는 바쁘게 흘러가는 삶에 ‘쉼표’ 같은 영화다.

‘싱글라이더’는 표면적으로 기러기 가족의 비애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게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삶에 대한 반문, 애써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용기 그리고 마음 속 깊숙한 곳에 감추고 있던 진심에 대한 뒤늦은 고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는 호주의 한 바닷가를 누비며 마냥 행복한 듯한 웃음소리를 내는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내 온갖 고뇌에 휩싸인 재훈(이병헌)의 모습으로 반전된다. 아내 (공효진)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인 재훈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또 그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되길 자처했다.

증권회사 지점장으로서 안정된 직장과 반듯한 가족,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던 재훈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터진 대형 부실채권 사건은 그에게 회사와 돈, 사람의 신뢰를 한꺼번에 잃게 했다. 죄책감에 휩싸인 그의 머릿속을 스친 건 가족이었다. 모든 것을 잃은 재훈은 그렇게 홀로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싱글라이더’의 사전적 의미는 일인 탑승객 즉 홀로 떠난 여행객이다. 제목의 의미처럼 영화는 홀로 떠난 여행객 재훈이라는 한 남자의 눈높이와 시선을 통해 인물과 공간의 거리감을 섬세하게 구현해 낸다.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는 집 앞에 가서도 차마 그들에게 다가서진 못한다. 이웃 남자 크리스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도 곁에서 바라볼 뿐이다.

재훈의 시선으로 보는 캐릭터들의 면면도 관객들에게 또 다른 공감 코드를 준다. 결혼 이후 잊고 있던 바이올린 연주를 다시 시작하는 수진, 호주 농장에서 2년간 일을 하며 고생스럽게 번 돈을 사기당한 워홀러 유진아(안소희)는 각각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엄마, 청춘의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진아는 사기를 당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잃었다. 재훈과 진아의 상황이 맞물리는 부분이다. 결국 진아는 재훈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이병헌은 대부분의 신을 대사가 아닌 감정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양한 상황을 바라보는 만큼 수많은 감정신이 등장한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게 없다. 이병헌이 선보이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나 대사로 표현한 수 없는 디테일한 표정은 그야 말로 압권이다. 공효진 역시 전형적인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서 그리고 꿈을 찾는 한 여성, 그리고 마지막 감정신까지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영화의 시작을 알렸던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의 한 구절이다. 이는 영화 전체를 응축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이들에게 ‘싱글라이더’는 잠시 쉬어갈 시간을 갖게 한다. 이는 결국 영화를 볼 때보다 보고 난 이후의 여운이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유다. 러닝타임 97분. 15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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