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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View] 김기덕 감독, 그가 던진 ‘그물’에 잡힌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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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기억으로는 2004년 초 겨울이었다. 충무로의 한 극장이 폐관을 앞두고 언론시사회 장소로 대관이 됐다. 지금도 그랬지만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던 김기덕 감독의 신작 ‘사마리아’가 언론에 첫 선을 보인 자리였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 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벌어진 김 감독의 강렬한 몇 마디는 무려 12년이 지난 현재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그 동안 김 감독은 자신에게 야멸찬 평가를 내리던 국내 언론 및 영화인들과의 어울림을 피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그에 대한 평가는 전 세계적으로 화려했다. 국내 감독 중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력은 단적인 예일 뿐이다. 파격과 충격의 아이콘이란 수식어도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보다 유연해진 점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절대 놓지 않는 것은 이미지의 스토리 전환이었다. 영화 ‘그물’을 통해 너무도 오랜만에 국내 언론과 자리를 함께 했다.

언론 시사회 후 만난 김기덕 감독은 ‘날’이 서 있을 것이란 예전의 기억과 막연한 선입견의 중간 단계에 놓여 있는 듯했다. 워낙 대단한 달변가이기에 한 개의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의 밑바닥에 놓인 어떤 것까지 유추해 말로서 전달해 왔다. 유쾌하면서도 적당히 번뜩이는 칼이 입안에 놓인 듯 김 감독의 언변은 여전한 느낌이었다.

“참 오랜만에 국내 언론 분들과 인터뷰를 갖게 됐죠. 글쎄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은 없습니다. 감독은 영화로만 말하면 될 뿐 쓸데없이 카메라 앞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요. 하지만 그 신념도 현재의 배급 시장 변화에 대해 순응할 필요성은 있다고 봤죠. 내 영화를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싶고 또 보여주고 싶다는 열정과 애정을 저한테 보여주셨죠. 내가 그런 것까지 신념 하나 때문에 방해를 해야 할까? 그럼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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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것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국내 배급 시장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대명사처럼 불린 그가 결국 영화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카메라 앞으로 나선 것도 이례적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영화도 사실은 ‘김기덕스럽다’에서 조금은 빗겨나 있었다. 물론 소재적인 측면이 아닌 표현 방식의 차이였다. 물론 김 감독은 이런 질문을 거부했다.

“‘그물’을 보시고 그런 반응들을 내보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전 사실 지금도 이해가 안돼요. 제 어떤 영화보다도 잔인한 감성이 녹아 있거든요. ‘피에타’에서 기계로 린치하는 장면처럼 폭력이나 피를 보여준다고 잔인한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물’처럼 한 사람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과정이 더 잔인하지 않나요. 육체적인 기능을 죽일 순 있지만 영혼까지 죽이는 건 얼마나 잔인합니까. 이 영화는 혼을 파괴하는 얘기에요. 전 이것이야말로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의 말처럼 영화 ‘그물’에서 한 남자의 영혼까지 짓밟는 파괴하는 수단은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를 만들어낸 이념 논쟁이다. 일반적인 가학의 고통이 아닌 한 인간의 내면적 파괴가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시선이 강렬했다. 그 시선 속에서 북한 어부 철우(류승범)는 생명력의 표현 방식인 섹스를 잃는다. 철우를 취조하던 국정원 조사관(김영민)은 이념의 극단에 선 인물을 대변하기 위해 광적인 애국가 열창으로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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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글쎄요. 누가 나쁘다. 누가 악인이다. 이런 개념으로 접근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조사관이 나쁜 사람으로 나오는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정말 나쁜 사람일까요. 자신의 입장도 있고 어떤 트라우마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관객들에겐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순간에 저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잘잘못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가 이렇다는 것을 대변하고 싶었죠. 우린 그것에 잡혀 꼼짝 못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관객 분들이 철우를 자신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봤어요. 만약 보위부 요원 시선으로 보거나 남한 조사관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은 왜곡 되는 거죠.”

사실 ‘그물’은 김기덕의 시선으로 본 이념 영화가 아니다. 그의 자전적 스토리가 어느 정도 녹아들어간 얘기였다. '풍산개' '붉은 가족' 등 작품을 통해서도 남북문제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바 있는 김기덕 감독이었다. 이번 ‘그물’을 만들고 또 그 안에 모든 인물들을 창조해 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사셨던 상이용사이셨어요. 전 그 모습을 보며 평생을 살아왔죠.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가 겪는 고통 때문에 북한을 증오하고 배척하며 살았었죠. 결국 군대도 해병대를 갔고 그 곳에선 더 한 적개심을 습득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가오는 게 있더라구요. 단순한 분노 폭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 감독이 적개심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웃음)”

김기덕 감독은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 관련 문제에 좀 더 냉정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것이 아닌 공존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 생각은 오롯이 ‘그물’ 속에 투영됐다. 외부 요인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결국 우리의 문제를 만들어 낸 것 자체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문제를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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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안에서 냉정하게 질문해보고 싶었죠. 이 사회가 왜 서로를 의심하는지. 왜 종북이니 배신자니 하면서 ‘누구의 편이냐’고 집요하게 묻는지 말이에요. 이런 의심과 편 나누기, 결국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나라가 갈라지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이잖아요. 그저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현재 남북 관계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거대 담론 같은 시선이 아닙니다. 전 개인들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물’에 대한 얘기로 좀 더 화제를 돌렸다. 극중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연극적이고 과장된 느낌도 없지 않아 느껴졌다. 감독의 의도가 됐을지라도 말이다. 물론 김 감독의 영화들은 스토리와 인물 중심이 아닌 이미지를 스토리를 전환시키고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에 있다. 이 방식은 김 감독이 데뷔작부터 지켜오는 지점이다.

“과장된 느낌이나 어떤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죠. 예전 대부분의 작품이 그랬고 이번 ‘그물’도 기획 촬영 연출 모두 저 혼자 했어요. 돈이 문제겠죠(웃음).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전 그냥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만드는 거죠. 제겐 아직 다른 방법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자주 선 보이지 못하는 것도 있네요. 하하하. 조금 매끄럽지 못하고 투박한 것도 분명 있죠. 하지만 그 점도 김기덕의 영화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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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이콘처럼 변해버린 김기덕의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투를 튼 것 같은 헤어스타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래된 듯한 느낌의 개량 한복 여기에 두텁게 굳은살이 베긴 맨발을 드러낸 채 꺾어 신은 신발. 가벼운 질문에 그는 파안대소를 하면서 자신의 외모적 혹은 비주얼에 대한 자체 평가를 내놨다.

“한 때 모자만 고수했었는데 이렇게 한 번 했더니 멋지다고 하대요. 하하하. 그냥 뭐랄까. 어느 순간 내 몸에 신경을 못 쓰게 되는 순간이 오면서 그냥 방치했던거죠. 헤어스타일은 그렇고. 옷은 제가 한 번은 칸 영화제에서 정장을 입은 적이 있어요. 칸 영화제가 드레스 코드가 엄격하잖아요. 너무 불편하고 진짜 죽겠더라고요(웃음). 그나마 베니스는 좀 옷에 대해 관대해요. 아마 베니스 때부터 이 옷을 입은 것 같은데 그냥 편해요. 편한 게 좋아서. 하하하.”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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