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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시사회 후 만난 김기덕 감독은 ‘날’이 서 있을 것이란 예전의 기억과 막연한 선입견의 중간 단계에 놓여 있는 듯했다. 워낙 대단한 달변가이기에 한 개의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의 밑바닥에 놓인 어떤 것까지 유추해 말로서 전달해 왔다. 유쾌하면서도 적당히 번뜩이는 칼이 입안에 놓인 듯 김 감독의 언변은 여전한 느낌이었다.
“참 오랜만에 국내 언론 분들과 인터뷰를 갖게 됐죠. 글쎄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은 없습니다. 감독은 영화로만 말하면 될 뿐 쓸데없이 카메라 앞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요. 하지만 그 신념도 현재의 배급 시장 변화에 대해 순응할 필요성은 있다고 봤죠. 내 영화를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싶고 또 보여주고 싶다는 열정과 애정을 저한테 보여주셨죠. 내가 그런 것까지 신념 하나 때문에 방해를 해야 할까? 그럼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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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보시고 그런 반응들을 내보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전 사실 지금도 이해가 안돼요. 제 어떤 영화보다도 잔인한 감성이 녹아 있거든요. ‘피에타’에서 기계로 린치하는 장면처럼 폭력이나 피를 보여준다고 잔인한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물’처럼 한 사람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과정이 더 잔인하지 않나요. 육체적인 기능을 죽일 순 있지만 영혼까지 죽이는 건 얼마나 잔인합니까. 이 영화는 혼을 파괴하는 얘기에요. 전 이것이야말로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의 말처럼 영화 ‘그물’에서 한 남자의 영혼까지 짓밟는 파괴하는 수단은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를 만들어낸 이념 논쟁이다. 일반적인 가학의 고통이 아닌 한 인간의 내면적 파괴가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시선이 강렬했다. 그 시선 속에서 북한 어부 철우(류승범)는 생명력의 표현 방식인 섹스를 잃는다. 철우를 취조하던 국정원 조사관(김영민)은 이념의 극단에 선 인물을 대변하기 위해 광적인 애국가 열창으로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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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물’은 김기덕의 시선으로 본 이념 영화가 아니다. 그의 자전적 스토리가 어느 정도 녹아들어간 얘기였다. '풍산개' '붉은 가족' 등 작품을 통해서도 남북문제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바 있는 김기덕 감독이었다. 이번 ‘그물’을 만들고 또 그 안에 모든 인물들을 창조해 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사셨던 상이용사이셨어요. 전 그 모습을 보며 평생을 살아왔죠.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가 겪는 고통 때문에 북한을 증오하고 배척하며 살았었죠. 결국 군대도 해병대를 갔고 그 곳에선 더 한 적개심을 습득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가오는 게 있더라구요. 단순한 분노 폭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 감독이 적개심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웃음)”
김기덕 감독은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 관련 문제에 좀 더 냉정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것이 아닌 공존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 생각은 오롯이 ‘그물’ 속에 투영됐다. 외부 요인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결국 우리의 문제를 만들어 낸 것 자체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문제를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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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대한 얘기로 좀 더 화제를 돌렸다. 극중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연극적이고 과장된 느낌도 없지 않아 느껴졌다. 감독의 의도가 됐을지라도 말이다. 물론 김 감독의 영화들은 스토리와 인물 중심이 아닌 이미지를 스토리를 전환시키고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에 있다. 이 방식은 김 감독이 데뷔작부터 지켜오는 지점이다.
“과장된 느낌이나 어떤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죠. 예전 대부분의 작품이 그랬고 이번 ‘그물’도 기획 촬영 연출 모두 저 혼자 했어요. 돈이 문제겠죠(웃음).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전 그냥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만드는 거죠. 제겐 아직 다른 방법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자주 선 보이지 못하는 것도 있네요. 하하하. 조금 매끄럽지 못하고 투박한 것도 분명 있죠. 하지만 그 점도 김기덕의 영화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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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모자만 고수했었는데 이렇게 한 번 했더니 멋지다고 하대요. 하하하. 그냥 뭐랄까. 어느 순간 내 몸에 신경을 못 쓰게 되는 순간이 오면서 그냥 방치했던거죠. 헤어스타일은 그렇고. 옷은 제가 한 번은 칸 영화제에서 정장을 입은 적이 있어요. 칸 영화제가 드레스 코드가 엄격하잖아요. 너무 불편하고 진짜 죽겠더라고요(웃음). 그나마 베니스는 좀 옷에 대해 관대해요. 아마 베니스 때부터 이 옷을 입은 것 같은데 그냥 편해요. 편한 게 좋아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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