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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덕혜옹주’ 손예진, 그가 느낀 ‘한(恨)’의 무게
역사 속 실존 인물 연기하며 느낀 감정의 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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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또 다시 손예진이다. 불과 두 달 전 손예진은 ‘비밀은 없다’를 통해 ‘손예진 역대 최고’란 찬사를 쏟아지게 만들었다. 데뷔 이후 청순미의 대명사로 통하던 그는 자기 복제를 거부한 채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 괴물 같은 여배우의 연기력은 농도를 가늠키 힘들 정도로 진한 내음을 풍겼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진화의 형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 여배우는 배우이기에 앞서 한 여자로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한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아니 손예진은 어느덧 그 인물을 살려냈다. 손예진은 그냥 ‘덕혜옹주’였다. 한반도 5000년 역사 속에서도 가장 한 맺힌 삶을 살다간 이 여인의 아픔은 오롯이 손예진이 얼굴과 온 몸으로 되살아났다. ‘덕혜옹주’가 곧 손예진이 된 시간이었다.

영화 개봉 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손예진은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밝은 ‘손예진’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 속 한 켠에는 분명 굴곡의 삶을 살다간 비운의 여인이 남아 있었다.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여운이 이 여배우를 사로잡고 있는 듯 보였다. 데뷔 이후 20여편 남짓의 영화를 경험했지만 이번 영화는 정말 특별해 보였다.

“이번 영화는 정말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제가 스스로 울컥하고 눈물을 흘려본 것도 처음이에요. 정말 기분이 묘했어요. 창피하기도 해요(웃음). 제가 제 연기보고 그랬다고 어휴 닭살 돋아서 하하하. 그냥 아직까지 어떤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배우라면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흥행 안되면 어쩌지 등등. 이번에는 좀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분명히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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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 감정의 본질을 손예진은 ‘삶’이란 한 단어로 표현했다. 그저 그런 삶을 살아왔고 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는지에 대한 얘기라고 했다. 그 시절의 아픔과 고통이란 대의명분이 분명하게 남아 있지만 이번 ‘덕혜옹주’에선 사실 그런 지점을 말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한 여인이 겪은 그 아픔의 깊이가 너무 쉽게 잊혀진 것에 대한 책임감이라면 너무 거대할까.

“이번 영화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어떤 특별한 교훈을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글쎄요. 그냥 인생에 대한 영화라고 하고 싶어요. 그저 그렇게 사실 수밖에 없었던 그 한 여인의 세월이 같은 여자로서 너무 가슴 아팠어요. 독립운동을 하는 멋지고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람들이 더 많았잖아요. 그런 세월 속에 이 여인은 어떤 고통을 짊어지고 살았을까. 그 얘기 같아요.”

‘덕혜옹주’의 삶에 오롯이 집중한 얘기는 자칫 오해의 시선을 낳을 수도 있었다. 손예진도 그 지점을 잘 알고 있었다.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은 더욱 그러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의 수위와 표현의 방식에 따라서 이 얘기는 오해로 갈 수도 있었다. 반대로 이 영화의 본질을 살릴 수 있는 포인트가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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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덕혜옹주’를 미화하거나 그 분의 삶이 다른 그 시절의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보다 더 크다고 말하고 싶지도 그럴 생각도 없어요. 이 영화는 그게 아니거든요. 그저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차분하게 담는게 목표였죠. 영화적인 장치도 분명히 있지만 팩트에 근거한 지점을 일 뿐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어요. 최소한 진실을 갖고 캐릭터에 접근하는 게 저의 방식이었어요. 우선 영화의 원작이 베스트셀러였잖아요. 그 책을 기반으로 한 부분이 많고. 또 보시면 아실 거에요. 그 분을 절대 미화할 생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란 점을요.”

담담하지만 격정적인 감정의 진폭도 이 영화는 분명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위가 넘어가는 지점에서 영화는 한 발씩을 뺐다. 혹은 보폭의 반을 줄이는 영민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 지점은 당연하게도 또 그럴 수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멜로의 대가로 불리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감독님의 그 지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여러 장면에서 배우들이 ‘조금 더’를 생각했어요. 조금 더 나아가도 감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은 ‘아니다’고 선을 그어주셨죠. 또 배우들이 끝까지 감정을 끌어 올려 찍은 장면들도 많아요, 그런데 완성된 영화에선 다르더라구요. 편집으로 통해 분명히 색깔을 내주셨죠. ‘덕혜옹주’가 성공을 거둔다면 허 감독님의 힘이 절반 이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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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한 여인의 삶으로 나누던 얘기는 한 남자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허진호 감독이다. 손예진은 ‘외출’에서 허 감독과 한 번 작업을 했던 사이다. 허 감독은 ‘한 번 작업한 배우와는 절대 다시 작업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거의 철칙과도 같은 그 기준을 손예진이 깬 것이다. 손예진은 당초 ‘덕혜옹주를 허진호 감독이?’라면서 신기해 했었다고 한다.

“기사로 처음 접했죠. ‘감독님이 그런 얘기를?’이라고 했어요. 되게 이상했어요. 아니 신선했다고 하는 게 맞겠죠. 대체 감독님이 만드는 ‘덕혜옹주’는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어요. 그냥 그렇게 관심이 가는 기사를 본 뒤 몇 년이 흐른 것 같아요. 사실 기사로 처음 접했을 때도 생각 했지만 ‘만들어 지는 게 쉽지는 않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한 여자의 삶에 대한 얘기인데. 충무로의 트렌드와는 좀 먼 얘기잖아요.”

하지만 돌고 돌아서 그렇게 우연히 접했던 ‘덕혜옹주’는 손예진의 손으로 들어왔다. 거짓말과도 같은 얘기지만 사실이었다. 손예진 스스로도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 영화가 결국 자신의 앞에 오자 묘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허진호 감독을 만난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운명을 느낀 것이었는지 그는 출연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옳았음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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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운명이었겠죠. 처음 기사를 접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나. 한 영화제에서 우연히 감독님을 뵙게 됐어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예진아 한 번 보자’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냥 단순한 인사는 아니구나. 눈치를 챘죠(웃음). 그리고 만난 자리에서 책(시나리오)을 받았어요. 이미 소설은 예전에 읽었던 경험이 있구요. 그냥 해야겠다. 흥행 여부를 떠나서 그냥 해야겠다. 그 뿐이었어요.”

다시 영화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믿음이 결국 확신으로 변하게 된 것을 확인했기에 그는 즐거웠을 것이다. 눈에선 즐거움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슬프고 웃을 수 없는 설명되지 못할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는 영화 속에서 유독 자신을 끌어당긴 한 장면을 꼽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눈물 날 것 같아요. 휴. 실제 자료 사진을 봤어요. 그때 ‘덕혜옹주’의 표정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어요. 동공에 초점이 없더라구요. 슬픔? 고통? 아픔? 그런 것이 아니네요. 그냥 텅 빈 느낌이었어요. 대체 뭐가 이 여인을 이렇게 만들었지? 갑자기 그 장면에서 저도 빠져 나오질 못하겠더라고요. 그저 슬픔도 아픔도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에 저 역시 미칠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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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손예진은 바랐다. 흥행 여부를 떠나서 바랐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 그 텅빈 느낌을 받았을 때의 공감을 말하는 듯했다.

“대한제국의 황녀란 거창한 타이틀이 아니에요. 그저 비극의 역사에서 한 여인의 삶이 통째로 사라졌잖아요. 그 세월의 아픔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참 어렵지만 그 지점을 조금은 느끼신다면 영화 ‘덕혜옹주’의 존재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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