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바·12시간 룸서비스 없음 등급 보류
영화 ‘콘크리트’ 지분규제에 투자 못 받아
한국선 외국인만 에어비앤비 이용 가능해
실버타운 간호사 의료행위, 양호실은 불법
프랑스 포르텡 베징 후팽에 위치한 샤토호텔. [셀틱캐슬 홈페이지] |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프랑스에는 고성이나 귀족 저택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복원한 샤토호텔이 도심 외곽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숙박료가 비싸지만 중세시대 분위기가 나는 성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4성급 샤토호텔이 만약 한국에서 등급심사를 받았다면 3성급으로 떨어진다. 국내 현행법은 미니바를 운영하지 않을 경우 감점하고 룸서비스를 하루 12시간 이상 운영하지 않으면 등급결정을 보류하기 때문이다.
호텔업은 3년마다 국가기관으로부터 등급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샤토호텔의 경우 4성급 숙박시설로 인정받으려면 미니바와 룸서비스 등을 위한 시설과 인력을 모두 구비해야 하는 셈이다.
유럽은 미니바, 룸서비스 중 1개만 운영하면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일본은 우리나라 같은 등급제도가 없다. 특히 비즈니스 호텔이나 독특한 콘셉트의 소형 부티크 호텔 등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현행법의 평가기준이 이러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숙박업을 비롯해 유통·영화·의료·게임 등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30대 규제개선 과제’를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고 30일 밝혔다.
한경협은 이번 제안서에서 호텔 등급심사 시 현행 4성 호텔 미니바, 룸서비스 관련 평가기준에 대해 시대 변화와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필수사항이 아닌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왼쪽)와 서울의 봄. |
영화 산업의 경우 중소기업 지분이 60% 미만이면 벤처캐피탈(VC) 투자를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여름 극장가에서 선전했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VC 투자를 유치할 수 없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인 중앙홀딩스의 최대주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제작했기 때문이다. 반면, 중소기업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한 ‘서울의 봄’은 총 9개사의 VC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한경협은 “코로나19 이후 개봉이 지연되거나 투자가 막힌 영화가 60편 이상일 만큼 영화 산업의 자금 경색이 심각한 상황이다. 투자-회수-재투자의 자금순환이 원만해질 때까지 3~4년간 한시적으로 벤처투자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유숙박 에어비앤비를 외국인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법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경협은 “관광진흥법에 ‘공유숙박업’을 신설해 관련 산업을 제도화하고,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고 오피스텔도 공유숙박이 가능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복지주택 등 실버타운에서는 현행법 공백으로 간호사의 의료행위가 불법이다. 노인복지주택 내 간호사 배치기준이 없어 혈당 측정이나 상처 소독 등 간단한 처치가 불가능하다. 노인복지법상 노인복지주택 직원 배치기준에 간호사를 포함하고, 업무규정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 자료] |
한경협은 대형마트의 야간 영업시간 제한과 매월 두 번의 의무휴업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해선 지자체별 권한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영업금지 시간에는 온라인 거래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 새벽배송 업체의 성장과 알리·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의 위협이 거센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오프라인 유통업 규제가 국내 유통산업의 침체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한경협은 면세점의 매출에 기반을 둔 특허수수료 산정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면세점은 2022년 코로나19로 약 1650억원의 적자를 봤지만 특허수수료로 161억원을 납부했다.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면세사업 규모가 큰 국가들은 면적당 혹은 점포당 정액제 방식으로 운영한다. 한경협은 “면적 단위 혹은 영업이익 기반 등 보다 합리적인 기준으로 특허수수료 산정기준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비스산업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서비스업 비중(58%)은 미국(77.6%), 일본(71.4%), 프랑스(70.7%)보다 낮다.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종합지원책이 필요하지만 2011년 처음 발의됐던 기본법은 매 회기 폐기됐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한 것은 지나친 영업‧진입규제, 미흡한 정책적 지원에 기인한다”며 “제조업에 비해 차별적인 지원과 규제장벽을 개선해 서비스산업 선진화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oz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