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65%·독일 25%·일본 15% 도입…韓 0.6% 불과
“RSU, 장기적 성과에 집중…혁신인재 유치·유지 유인”
승계 수단화 우려엔 “공시 강화, 투명·정교한 소통해야”
“자율적 RSU 도입 위해 포괄적 규제 접근·세제혜택 필요”
25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권세원(왼쪽부터) 이화여대 교수, 양희동 한국경영학회 차기회장(이화여대 교수), 김재구 한국경영학회 전 회장(명지대 교수), 이정현 명지대 교수, 이영달 한국경영학회 부회장(NYET 교수)이 패널토론을 하고 있다. 정윤희 기자 |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돌파한 이후 퇴사율이 절반으로 줄었다. 왜냐, 성과 보상으로 받는 주식 때문이다.”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도입이 기업의 혁신인재 유치와 유지, 스타트업 인수합병(M&A) 활성화 등에 꼭 필요한 제도라는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국내서도 기업들이 자율적인 RSU 도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세제혜택 등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양희동 한국경영학회 차기회장(이화여대 교수)은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한국 기업의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활용 쟁점과 대안’ 학술세미나에서 “RSU 등 임직원 보상제도는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데 필수”라며 이같이 말했다.
RSU는 성과 달성이나 재직 기간 등의 조건을 걸고 성과급을 주식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다만, 일정 기간(3~10년) 동안 팔 수 없기 때문에 이른바 ‘먹튀’가 불가능하다. 최근 국내서도 RSU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장기업 중 RSU 도입율은 0.6% 수준에 불과하다. 한화, 두산, 에코프로 등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상장기업의 65% 이상, 독일과 일본 역시 각각 25%, 15% 가량 RSU를 도입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날 세미나에서 RSU를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특히, RSU 도입으로 유능한 인재를 유치·유지하는 대표적 사례로 엔비디아를 들었다. 엔비디아는 직원들이 일정 요건을 달성할 경우 기본급의 절반 가량을 RSU로 받을 수 있다. 지난 5년간 엔비디아의 주가는 무려 3776%나 폭증했다. 엔비디아에 5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의 경우 엄청난 부를 축적한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23년 5.3%던 엔비디아의 퇴사율은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돌파한 이후 2.7%로 하락했고 꾸준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평균 퇴사율은 17.7%다. 지난해 기준 미국 기업별 평균 근무연수도 엔비디아(3.2년)가 애플(1.7년), 아마존·메타(1.8년), 테슬라(2년) 등에 비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양 교수는 “미국의 시총 상위 30개 기업 중 28개사가 RSU를 도입하고 있고, 이중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최대 주주인 최고경영자(CEO)에게도 RSU를 부여해 장기적인 성과를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식을 살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의 경우 모든 관심이 권리행사 시점의 주가에 쏠리는데, RSU는 근무기간과 성과가 조건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회사의 성장, 성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 분석 결과, 기술, 유통,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RSU가 기업의 매출, 이익 등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25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양희동 한국경영학회 차기회장(이화여대 교수)가 ‘글로벌 기업의 RSU 운영 현황 비교와 한국의 RSU 도입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정윤희 기자 |
이영달 한국경영학회 부회장(NYET 교수) 역시 “기업의 혁신경쟁은 무한하게 펼쳐지고 있고 혁신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의 혁신 역량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혁신인재 전쟁에서 탁월한 미국 기업들의 경우 RSU를 활용하지 않는 기업은 버크셔해서웨이 하나밖에 없다”고 짚었다.
최근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며 고급 인력 유출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RSU 도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인도, 이스라엘에 이어 AI 인재 유출이 세 번째로 많은 국가로 나타났다.
특히, RSU가 스타트업 M&A 활성화의 ‘시크릿 코드’가 되고 있다고 분석도 내놨다. 빅테크 기업이 스타트업의 혁신인재를 영업하기 위한 M&A시 빅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RSU가 매력적인 협상 수단이 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RSU가 매개가 돼 혁신인재가 유치되고 그들이 혁신활동에 몰입하면서 이것이 기업의 성과로, 또 시장가치 증대로 이어진다. 특히 IT기업에서 RSU가 기업의 퍼포먼스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 현재 일련의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RSU가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쓰일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상위원회가 RSU 관련 사항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기업의 공시를 강화해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과 정교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RSU 운영 과정을 우려 해소 대안으로 소개했다. 미국의 경우 보상위원회가 보상계획을 수립해 이사회 승인을 검토한 후 매우 상세한 대리인 성명서(Proxy Statement)를 작성해 주주들에게 제공한다. 이후 주주총회 승인을 거치는 식이다. 여기에 RSU가 재무상태 및 주주가치에 미친 영향을 분석·평가하고 이를 주주들에게 공시하는 절차도 있다.
이 교수는 “핵심은 보상위원회와 대리인 성명서”라며 “세일즈포스의 사례를 보면 개인 최대주주인 CEO 마크 베니오프가 급여 160만달러, 보너스 250만달러, RSU 1600만달러, 스톡옵션 1400만달러 등 합계 4000만달러를 받는 이유를 총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대리인 성명서를 통해 설명하자, 최대주주인 뱅가드그룹이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키도 했다”고 소개했다.
25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이영달 한국경영학회 부회장(NYET 교수)가 ‘RSU 도입 및 활용이 기업 혁신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정윤희 기자 |
권세원 이화여대 교수 역시 “오너 경영인에게 지금처럼 현금보상을 줄 경우 그 돈으로 주식을 사면 그것이 결국 RSU나 다름 없다”이라며 “오히려 RSU의 경우 일정 기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오너 경영인이 일시에 많은 주식을 매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상속세 재원 마련 등을 이유로 오너 일가가 일시에 주식을 매도,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정현 명지대 교수는 “종업원의 관점에서 봐도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 제도가 종업원 개인의 자산형성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는 것과 달리 RSU는 실질적으로 임직원의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며 “엔비디아의 기업가치 제고가 임직원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기업들의 자율적 RSU 도입을 위해 포괄적인 간접적 규제를 적용하고, 동시에 세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한국은 RSU 도입이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며 법적 규제와 세제 혜택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한국도 공시를 강화하는 대신 부여절차, 부여방식, 부여대상 등에 대한 제한 없이 RSU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운영상의 혜택을 주는 등 RSU에서 가장 앞서있는 미국의 사례를 따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도 “‘내가 왜 삼성전자에서 일하나, 엔비디아 가지’라고 하지 않도록 혁신인재를 유치해 조직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RSU 같은 지분기반 보상제도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RSU를 도입할 수 있도록 미국처럼 선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좌장을 맡은 김재구 전 경영학회장(명지대 교수)은 “지금 한국사회의 혁신 현실을 봤을 때 ‘소는 누가 키우나’하는 우려가 많다”며 “전 세계가 혁신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기업들이 스스로 가장 합목적적이고 시장경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자율적으로 RSU 등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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