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판매되는 난각번호 4번 달걀.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가장 저렴한 가격의 달걀, 바로 숫자 ‘4’의 달걀이 곧 사라진다. 난각번호 4번 달걀로, 이 달걀은 A4 용지 크기의 닭장에 갇힌 닭이 낳은 달걀이다.
닭장의 최소 면적을 넓히는 법이 내년 9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면서 이처럼 비좁은 닭장에서 나오는 달걀은 사라질 수순이다.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달걀. 주소현 기자 |
달걀의 난각번호는 1번부터 4번까지 있다. 그 중 닭장에 갇히지 않고서 야외에서 치는 닭(방사)의 달걀은 1번, 실내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닭(평사)의 달걀은 2번이다.
그리고 1~2번 달걀은 ‘동물복지달걀’로 분류한다.
3번과 4번 달걀은 닭장에 갇힌 닭들이 낳은 달걀이다. 3번과 4번의 차이는 닭장의 면적. 최소 면적이 0.075㎡ 이상이면 3번, 0.05㎡ 이상이면 4번 달걀이 된다.
특히, 심각한 건 4번 달걀이다. 0.05㎡, 즉 A4 용지 크기의 닭장이다. 여기에 갇혀 평생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는 게 4번 달걀의 닭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힌 닭은 불행할 뿐 아니라 이들이 낳는 달걀이 밥상 안전을 위협한다. 지난 2017년 큰 소동이 일었던 ‘살충제 달걀’은 공장식 닭장에서 비롯됐다. 닭들은 흙 목욕을 하면서 몸에 붙은 진드기를 털어내는데, 닭장에 갇힌 닭들은 진드기를 제거할 수 없어 살충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닭장에 갇힌 산란계 [동물권행동 카라] |
이에 당시 축산법 개정을 통해 최소 사육 면적이 마리 당 0.05㎡에서 0.075㎡로 늘어났다. 2018년 9월부터 신규 축사에 적용됐고, 약속했던 7년 간의 유예 기간이 내년 8월 31일이면 끝이 난다. 원래 대로라면 내년 9월 1일부터 4번 달걀은 아예 사라져야 한다.
문제는 여전히 0.05㎡ 이내 닭장에서 사육되는 닭이 절반 이상이라는 데에 있다. 달걀 수급 등을 고려해 정부는 내년 9월부터 새로 달걀을 낳는 닭부터 최소 사육 면적을 적용할 계획이다. 달걀을 낳는 닭들이 주로 1년 6개월~2년마다 교체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늦어도 2027년 9월께에는 4번 달걀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평사사육 [동물자유연대] |
가격도 문제다. 동물복지달걀의 가격은 일반 달걀의 약 1.5배 수준이다. 같은 면적에서 키우는 닭 마릿수가 적다 보니 값이 더 나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에 동물복지달걀 시장 점유율은 15.9%에 그친다고 한다.
소비자들도 동물복지달걀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로 가격을 지목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시장조사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55명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49.5%가 ‘일반 달걀보다 가격이 비싸서’ 동물복지달걀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실제 가격 차도 컸다. 응답자들은 달걀 10구 가격이 2740원이라면 동물복지달걀은 4485원까지, 약 20%를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동물복지달걀의 판매 가격은 일반 달걀보다 41.5% 더 비쌌다. 30구 기준 일반 달걀이 평균 6451원인데 비해 동물복지달걀은 9126원이었다.
방사사육 [동물자유연대] |
이같은 가격 차에도 동물복지달걀을 찾는 소비자들은 빠르게 늘고 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동물복지달걀 재구매율은 2023년 1분기 13.2%에서 2024년 2분기 19.0%로 늘어났다. 구입 의사가 있다는 응답자가 57%, 실제 구매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3%로 나타났다.
닭장을 바꾸느니 이참에 닭을 풀어 키우겠다는 산란계 농가도 있다.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167개 농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6개 농가는 동물복지달걀로 전환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최근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 산란계 농가가 연평균 53~59%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정부도 산란계 농가에서 축사를 늘리는 데 재정을 늘리고 있다. 농가 당 지원 금액 한도를 최대 133억원으로 상향했다.
동물복지달걀이 시중에 많이 풀리려면 식품 및 유통업체의 몫도 크다. 소비자들이 동물복지달걀을 사지 않는 이유 중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이 ‘판매처가 주위에 없어서’(24.7%)다. 산란계 농가 역시 값비싼 동물복지달걀로 전환하려면 달걀을 팔 곳이 있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가 입장에서는 달걀은 매일 나오는데 팔리지 않으면 난감하다”며 “확실한 수요처와 수량이 정해지면 농가들도 동물복지달걀로 바꾸기 위한 시설 투자에 굉장히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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