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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음악 미래 주목하라”…K-클래식 직감한 야노스 슈타커 제자들이 모인 이유
야노스 슈타커와 양성원 [롯데콘서트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의 음악 미래를 잘 돌보고 주목하라.”

1967년 국내외 정세가 불안정하던 당시, 헝가리 태생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1924~2013)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임원식 상임 지휘자가 이끄는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서다. 첫 연주를 시작으로 수차례 한국을 찾은 거장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문화 변방’ 한국의 클래식 음악 인재들에 대한 당부와 조언을 잊지 않았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야노스 슈타커를 사사한 츠요시 츠츠미(82) 산토리홀 대표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않았던 때에도 슈타커 선생님은 한국 연주자들의 미래를 직감하셨다”며 “한국의 음악 미래를 잘 돌보라는 예언 같은 그 말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대인이었던 슈타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혹독한 고난 겪은 이후 194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58년부턴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주자와 교육자의 활동을 병행했다. 그의 한국 제자들도 상당히 많다. 첫 한국인 제자로 국내 첼로계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종영(78)을 비롯해 양성원(57), 이재은, 이현정 등이 있다.

“선생님께 한국인 제자들이 유독 많았던 것도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받으셨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문화와 전통 예술을 좋아하셨어요. 열심히 연습하는 학생들, 헌신적인 부모를 보여 이러한 노력과 자질, 헌신이 이후 한국이 클래식 세계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신 것 같아요. 제자들 중 미래의 멋진 음악가로 성장한 사람이 양성원 첼리스트라고 생각해요.” (츠요시 츠츠미)

첼로 거장 야노스 슈타커가 키운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첼로 페스티벌을 위해서다.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서울 롯데콘서트홀(7월 3~5일)과 도쿄 산토리홀(7월 5~7일)에서 릴레이로 이어진다. 슈타커의 생일인 7월 5일엔 한국의 피날레, 일본의 오프닝 무대가 이원 생중계된다.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를 사사한 츠요시 츠츠미와 양성원 [롯데콘서트홀 제공]

슈타커의 제자로 이번 페스티벌의 공동 예술감독을 맡은 츠요시 츠츠미와 양성원은 최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 세계에 흩어져 각자의 음악을 하고 있는 슈타커 선생님의 제자들이 모이는 페스티벌”이라고 말했다. 츠요시 대표는 1960년대, 양성원은 1980년대부터 슈타커와 인연을 맺었다.

일곱 살에 리스트 음악원에 입학한 야노스 슈타커는 어릴 적부터 신동, 영재 음악가로 이름을 알리며 세계 클래식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스승 슈타커는 뛰어난 음악가이자 교육자였다.

츠츠미 대표는 “슈타커 선생님은 연주활동으로 너무나 바쁘신 중에도 교육에 에너지를 쏟았다”며 “(선생님은) 연주와 교육은 자동차의 두 개의 바퀴 축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자동차는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젊은 세대를 길러내는 데에 헌신적인 교육자였다”고 말했다.

학교에서의 슈타커는 맞춤형 교육을 강조했다.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해 단점을 메우고 장점을 개발”(양성원)했다.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테크닉 이전에 ‘인간적 성장’과 ‘음악적 이상’을 추구하야 한다는 점이었다.

츠츠미 대표는 “전통과 역사, 문화를 배운 뒤 테크닉을 연마해야 그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걸 잊을 수 없다”며 “인간으로의 성장과 휴머니티를 많이 배웠다”고 했다.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를 사사한 츠요시 츠츠미와 양성원 [롯데콘서트홀 제공]

양성원 역시 “당장의 결과를 줄 수 있는 티칭을 할 수도 있지만, (슈타커 선생님은) 장기적 관점으로 바라보셨고, 우리는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인류 유산을 대표하는 예술가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다”고 “‘횃불을 계속 들고 가라(Keep carring the torch)’는 선생님의 말씀은 내 삶의 이정표가 됐다.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지키면서 후대를 위해 길을 밝혀야 하는 책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의 등장으로 첼로계는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보다 쉽게 첼로를 연주할 수 있도록 개발한 ‘왼손 주법’이 그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98년 그래미상을 받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모음곡’ 등 음반 150여 장을 남기며 음악가들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그가 가장 즐겨 연주한 곡은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이었다. 츠츠미 대표는 “슈타커 선생님의 인디애나 주의 한 지역에서 가장 큰 집에 사셨는데 실내 수영장이 딸린 집이 세 채나 있었다”며 “선생님은 농담처럼 코다이 무반주 덕분에 실내 수영장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며 웃었다.

이번 페스티벌에선 마르티나 슈칸 취리히 음대 교수, 마크 코소워 밤베르크 심포니 수석, 마르크 코페이 파리음악원 교수 등 슈타커에게 직접 배운 제자들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의 차세대 첼리스트 한재민과 미치아키 우에노가 무대를 선다. 한재민은 일본첼로협회에서 장학금을 받아 산토리홀에서, 우에노는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양성원은 “슈타커 선생님이 배출한 제자의 제자 등 3세대에 이르는 연주자들이 모여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이날엔 출연자 대부분이 출연료와 상관없이 출연했다”며 “슈타커 선생님을 기리는 것은 물론 차세대 음악가들과 함께 한일 친선 교류의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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