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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마다 한가득” 쓰레기 줍는 어르신들, 없으면 재활용 어쩔 뻔 했어? [지구, 뭐래?]
강원 춘천시에서 재활용품 수거 노인의 자전거 위에 있는 폐지가 길바닥에 쏟아지자 길을 지나던 소양고등학교 학생들이 폐지를 주워서 올려주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어디 신세 안 지고, 자유롭게.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집 앞에 내놓은 쓰레기 봉투를 뒤적여 캔이나 페트병을 골라내고, 손수레를 끌고 유유히 사라진다. 골목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때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이들을 보면 백이면 백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는 밥벌이”, “손녀 용돈 주려고”, “20년 넘게 산 내 동네. 봉사하고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으로도 노인들의 소일거리나 용돈벌이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 데 쓰레기 줍는 어르신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으로 자원순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역할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노인. 주소현 기자

가정과 상가의 재활용 쓰레기를 걷는 역할은 대부분 노인이 맡고 있다. 지정된 업체가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아파트나 공장 등 대단위 배출원과 달리, 주거 및 상업 지역에서는 각 문 앞에 쓰레기를 내놓기 때문이다.

적은 양씩 곳곳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을 걷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재활용 업계에서는 이들을 ‘도보꾼’이라고 부르는데, 절대 다수가 노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손수레, 유모차, 마트 카트 등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들것에 재활용 쓰레기들을 싣는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품 수집과 함께 분류도 이뤄진다. 종이나 플라스틱, 캔 등의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재질이 섞여 있거나 오염돼 있는 재활용품은 고물상에서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점도 있다.

재활용품 이동 도식 [서울연구원]

즉, 재활용을 촉진하고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데 쓰레기 줍는 노인들의 기여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에서 발생하는 재활용품의 80~90%는 일명 ‘고물상’이라 불리는 민간 재활용품 수집업자들에 의해 수거돼 재활용 경로로 흘러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다. 재생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대한 수요에 맞춰 커져 가는 재활용 산업 및 시장에 재활용품을 공급하고,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기까지. 재활용 쓰레기 줍기는 기후위기 시대 경제·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필수 노동이 됐다.

이에 대해 서울연구원은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재활용품 시장 생태계로 재활용품이 우선 진입하기 위한 수집 및 평가 과정에 개입하고 재활용품을 고물상에 공급하는 역할의 한 축을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재활용 업체 앞에 노인들이 수거한 폐지 리어카가 줄지어 서 있다. [연합]

이같은 막중한 책임에 비해 처우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낮은 소득과 긴 노동 시간, 교통사고와 자연재해 등에 노출 등 재활용 쓰레기 수집 환경은 열악하다. 이에 2019~2020년 재활용 쓰레기 수거 노인 지원을 위한 법률안이 발의된 적 있지만 법제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해외에서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 작업에 대한 처우 개선이 본격적이다.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2008년부터 쓰레기 줍는 사람들의 일을 공식화해달라는 요구가 나왔고, 2017년에는 콜롬비아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전세계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 1~5일 아르헨티나에서 34개국 46만명을 대표하는 국제폐기물수집가연합(International Alliance of Waste Pickers)이 제1회 총회를 열었다. 이들은 수집가들의 사회적 보호와 생산자책임확대 등 8가지 결의안을 승인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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