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불신, 25일 민주당경선 ‘광주선택’ 주목
광주대인시장이 도심공동화와 시설노후화, 소비패턴 변화 등으로 위기에 내몰렸다. 명절을 앞두고 헤럴드 취재진은 현장을 찾아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인주기자 |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대인시장은 80년 5·18 난리에도 한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당께. 시민과 심지어 계엄군도 찾던 상징적인 곳인디, 지금은 죽음의 시장이 되브렀어”
“추석 명절 대목. 그런거 없어라. 새벽 4시부터 장사하고 있는디 손님이 없어. 봐봐 이 골목만 해도 문연 가게가 4개밖에 없어 죽을 맛이여”
‘막걸리 2000원’, ‘생맥주 2500원’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주말. 광주 대인시장 입구 선술집은 적막함이 감돌았다. 손님을 붙잡기 위해 싸고 저렴함을 무기로 내세웠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시장입구 대형상가에서 위기감이 감지된다. 주인이 직접 임대한다는 현수막에는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건물 통째로 공실이다. 과거 이곳은 PC방과 과일가게, 옷가게가 있던 곳인데 수년째 새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끈 대인시장 골목의 한 선술집은 2년전 폐업했다. 가게에는 먼지쌓인 현수막만 붙어있었다. 서인주 기자 |
12일 대인시장은 사라진 손님과 문을 닫은 점포가 즐비했다. 경영악화로 폐업한 가게에는 임대문의 현수막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메인골목을 제외한 곳은 융단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다.
20년 가량된 천정 가림막은 곳곳이 찢어진 채 방치돼 있었고 빈가게에는 오래된 먼지가 수북하다. 비가 오면 빗방물이 그대로 골목에 쏟아진다.
노후화된 시설과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고객들은 외면했다.
몇해전 2300여세대의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공급됐지만 낙수효과는 없었다. 아파트 주변에 최신마트 3곳이 잇따라 오픈하면서 매출은 더 악화됐다.
온라인 소비패턴 변화 등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상인들의 책임도 크다. 이대로라면 대인시장은 머지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다.
정치권력이나 광주시나 동구청 등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심공동화 현상을 비롯해 시도청 이전, 대규모 재개발 인허가로 대인시장이 급격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추석 명절 특수는 사라진 지 오래라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높아가는 상황이었다. 서인주기자 |
대인시장 활성화 지원사업들도 실효성은 의문이다. 예산이 지원되는 동안은 반짝특수를 내지만 돈이 떨어지면 효과는 썰물처럼 사라진다. 실제 지난 2019년 동구의 청년상인 창업지원 사업에 선정된 ‘우리지금만나다방’, ‘치카치카’, ‘대인다방’ 상점 3곳 모두 폐업했다.
상인들은 지난 9일 민생탐방에 나선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광주시가 8억원을 들여 인근상권에 대인동예술담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소외돼 있다는 주장이다. 기존 상권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상권을 키운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대인시장 상인회 한 관계자는 “청년 상인들 대다수가 생계 유지를 위해 영업을 중단하고, 돈이 되는 새로운 일감을 찾아 떠났다”며 “대인시장에 공실 문제에 부담을 보탠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마주친 상인들의 표정에서는 명절특수의 분주함과 설레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주름 가득한 상인들의 얼굴에선 소상공인, 자영업의 고단한 현실이 묻어난다.
30년 넘게 건어물가게를 운영한 김선옥씨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만원짜리 몇장을 내보였다. 하루종일 장사해서 8만원 남짓 매출을 올렸다. 임대료, 물건값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 최근 원자재값이 크게 올라 장사가 더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살다살다 이런 불황은 처음이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하루종일 장사를 하는데도 시장자체에 사람이 안오니 버틸 재간이 없다” 며 “일요일이면 더 손님이 없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야시장마저 중단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인시장에서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정안식 사장은 10여년 넘게 장사해서 번돈을 지역사회에 기부해 왔지만 현재는 임대료도 못 낼 처지다. 그가 인근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기탁서를 보여주고 있다. |
야채를 팔고있는 장깡 정안식 대표는 대인시장 기부천사로 통한다. 지난 2000년부터 2019년까지는 매년 수백만원을 지역사회에 기부했는데 현재는 임대료마저 밀린 상태다. 밥줄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나눔은 언감생심이다.
정 대표는 “시장이나 구청장이 대인시장을 찾은적이 한번도 없다. 겉으로는 재래시장을 지원한다고 온갖 생색은 다 내는데 어이가 없다” 며 “시대의 흐름에 대처하지 못한 상인들도 잘못이 있지만 지자체의 지원과 대책도 실효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상인들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선거때만 얼굴을 비추고 막상 찍어주면 ‘강건너 불구경’이라는 입장이다.
80년간 대인동을 지켜온 토박이 A씨는 “대인시장이 이토록 망가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면 동네 주민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며 “국회의원이나 지역 정치인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고 있다. 내년 선거에는 특정정당 대신 인물만 보고 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는 25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광주에서 펼쳐진다. 대선후보들의 재래시장 활성화와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공약이 무엇일지 사뭇 궁금하다. ‘민주당 표밭’으로 알려진 광주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si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