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급등, 내수침체, 코로나 대유행에 사면초가
제조업 업황 나빠지는데 공장임대료 상승 기현상
하남산단 곳곳에는 공장과 사무실 매매,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기자] “진짜 죽겠습니다. 원자재값은 폭등하고 있는데 제품단가에는 반영하지 못하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어요. 그렇다고 공장문을 닫을 수도 없고요.”
“작년부터 적자가 쌓이기 시작하더니 올해부터는 일감이 확 줄었습니다. 대기업에 납품하던 배터리사업이 올스톱 되면서 매출이 80% 줄었습니다.”
추석을 보름여 앞둔 지난 주말. 호남을 대표하는 광주하남·평동·첨단산업단지의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초조함과 불안감을 토로했다. 원자재값 급등을 비롯해 내수부진, 물류난, 코로나 4차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산업단지는 말그대로 초상집 분위기다.
하남산단에서 20여년간 전자부품을 제조하는 A사는 이달초 500평 규모의 공장부지를 부동산에 내놨다. 1년가량 적자가 이어지면서 월 6000여만원의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이곳 사장님은 10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직원 월급날과 공과금 납부가 몰려있는 월말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 못 드는 밤이 늘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이유다.
제조업 경기는 악화되고 있지만 임대료는 올라가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지난해 마스크 제조업에 뛰어든 B사는 2억원을 들인 제조 기계를 폐기처분했다. 중국과의 대량납품 계약이 어긋난데다 공급과잉으로 납품단가가 곤두박질 치면서 두손을 든 것이다. 코로나 예방 선물키트도 출시했지만 판로가 막막하다. 결국 생산인력을 줄이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첨단산단에 있는 C사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광통신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이 회사는 수십억을 들여 대규모 마스크 제조라인을 구축했다. 하지만 수요예측 실패와 기술제휴, 유지관리 문제로 생산을 접었다. 대당 2000만원이 넘는 기계는 고철값도 받지 못하고 모두 폐기처분됐다.
대박의 꿈을 안고 뛰어든 마스크사업이 결국 쪽박이 된 셈이다.
광주전남 중소기업 경기전망은 수개월째 먹구름이다. 지난 5월 상승세가 꺽인 뒤 4개월 연속 하락세다.
5일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지역본부가 지역 중소기업 206곳을 대상으로 9월 경기전망을 조사한 결과 업황 전망 건강도 지수는 76.5로 전월 79.5와 비교해 3.0% 떨어졌다. 전국평균지수는 78.0이다. 항목별 전망으로 내수판매, 수출, 경상이익, 자금사정 등 대부분 항목에서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조사됐다.
‘공장 매매’, ‘사무실 임대’
하남산단에서 20여년간 전자부품을 제조하는 A사는 이달초 500평 규모의 공장부지를 부동산에 내놨다. 서인주기자. |
산업단지 거리 곳곳에는 임대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남산단 3번로 인근에는 건평 120평, 180평, 330평의 빈 사무실이 새주인을 찾고 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임대료 300만원으로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제조업 폐업이 늘고 있다’는 통계와는 달리 생산현장은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사정이 다르다. 대부분 공장마다 수천만에서 수십억의 대출이 있다보니 라인이 멈춰서면 금융권 대출상환 압박이 들어온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공장문을 연곳이 많다는 방증이다.
제조업 경기는 악화되고 있지만 임대료는 올라가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방에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으로 땅값이 오르자 공장부지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공장을 돌려 돈을 벌기 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게 더 빠르다는 속설이 진담으로 다가온다.
하남산단 인근 D부동산 관계자는 “재작년만 하더라도 평당 15000원하던 임대료가 올 들어 신축 2만5000원, 구축 2만원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며 “진곡산단 등 신축건물과 공장이 잇따라 공급되면서 노후산단의 이탈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광주의 경우 주력사업인 가전산업과 광산업 등이 주춤하면서 협력업체들의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기술력과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영세업체들은 자체 브랜드가 없다 보니 경쟁력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부품값 인상과 공급마저 불안해지면서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제조업의 위기는 인근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남4번로와 밀집한 광주수완지구 먹자골목은 점심 피크타임에도 빈자리가 많았다. 맛집으로 알려진 유명 추어탕집은 대기줄이 설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좌석은 절반 가량 비어 있었다.
하남4번로 인근 대형고깃집은 경영난으로 최근 폐업했다. 주말 이곳에서는 철거와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서인주기자. |
같은 골목 200평 규모 고깃집은 최근 문을 닫았다. 공장 직원들의 회식이 사라지면서 매출이 반토막 났다. 이곳의 임대료는 한달에 1000만원. 인건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폐업을 결정한 것이다.
산업단지 주변 원룸가도 공실이 늘고 있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정규직 대신 2~3개월 단기 파트타임만 늘다 보니 원룸 장기계약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오래된 원룸의 경우 울며겨자먹기로 월세를 깎아줘야 그나마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고깃집 사장님 E씨는 “이곳에서만 10년 넘게 직원과 사장으로 일하니 산단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서 회식을 오면 많게는 200만원 가량 매출을 올린적도 있다” 며 “하지만 코로나 장기화로 회식이 사라졌고 구내식당과 도시락을 이용하는 손님이 늘면서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위기속 중소기업들의 생존전략도 눈물겹다.
전자부품제조기업 샤론테크는 태양광 등 기존사업 대신 캠핑용 배터리 제품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대기업에 의존하던 방식 대신 자사 브랜드 개발로 활로 모색에 나선 것이다. 전 직원이 주말을 반납하고 연구개발에 올인했다. 결국 200A, 300A, 450A 캠핑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유튜브와 네이버라이브커머스 등 판로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샤론테크는 캠핑용배터리 신제품 출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대기업 의존대신 자사 브랜드로 생존전략을 모색한 것이다. 서인주기자. |
평동산단에서 더치커피를 생산하는 진솔은 광주시내에 있는 직영매장 2곳을 잇따라 정리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등 경영여건이 악화된데다 사회적거리두기 강화로 매출이 급감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매장을 철수했다. 대신 최신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담양호 인근 명지원을 인수, 고급 브런치카페로 변신했다.
정원일 샤론테크 전무는 “현재 중소제조업의 어려움은 심각한 수준” 며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력이 중요한 만큼 임전무퇴의 각오로 신시장을 열어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지속되면서 원자재 값 급등과 해운·물류난에다 내수위축까지 삼중고가 겹쳤다” 며 “현장의 위기감이 경기기대 심리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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