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재공연, 중년 관객몰이=뮤지컬 ‘벽속의 요정’은 중년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관람하기 좋은 공연이다. 1인 32역을 맡은 김성녀(61ㆍ사진)가 2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한다. 2005년 초연 뒤, 매년 앙코르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을 울리고 웃긴 작품으로 올해 7번째 공연이다.
전쟁 때문에 40년간 벽 속에 숨어 살며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아버지, 벽 속에 사는 요정이 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딸의 모습을 통해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그려낸다. 스페인 내전을 토대로 한 후쿠다 요시유키의 원작을 극작가 배삼식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재구성했다. 연출은 김성녀의 남편인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맡아 의미를 더했다.
▶61세 여배우 김성녀의 열연=환갑이 넘은 여배우가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김성녀는 양 갈래 머리의 소녀 역할도 무난하게 소화한다.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애교섞인 표정이 더해져, 소녀는 물론 꼬마아이까지 무리없이 변신한다. 그외에도 엄마, 아빠, 행인, 건달 등 혼자서 32역을 소화한다. 목소리 변주는 물론이고 걸음걸이, 표정 등을 바꿔가며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 객석을 놀라게 만든다. 머리띠, 모자, 바구니 등 작은 소품을 활용해 변신술을 자유자재로 펼치니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한 배우’다.
환갑을 넘긴 여배우의 내공은 젊은 배우들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노련한 경지에 이르렀다. 배우의 뿌리는 관객의 소중함을 아는 것에서 비롯됨을 아는 그는 공연 시작 전 “저를 위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극중 친절한 설명과 따스한 눈빛도 공연의 분위기를 한층 포근하게 만든다. 해마다 공연을 찾은 중년 관객들은 큰 소리로 “저희 또 왔어요”라며 탄탄한 ‘팬심(fan心)’을 보여준다. 그를 믿고 지지하는 중년팬들의 힘 덕분인지 김성녀는 2시간 넘게 지치지도 않고 무대 위를 오간다.
때로는 소극장 무대가 마당놀이판으로 바뀐 듯, 객석의 반응을 유도한다. 극중 달걀 행상을 나설땐, 바구니를 들고 객석으로 향한다. 관객들에게 달걀을 파는 설정으로 단조로운 극의 구성을 뛰어넘는다. 또 다른 장치로 뮤지컬의 형식도 곁들였다. 김성녀 특유의 한국적인 창법이 빛나는 12곡의 뮤지컬 넘버가 흘러나온다. 서양식 뮤지컬 창법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은 김성녀식 뮤지컬 창법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건 아름다워, 어떤 이유보다 더”=재미와 감동의 배합도 적절하게 버무려졌다. 공연 내내 웃느라 정신 없던 관객들은 극의 말미로 갈수록 눈물을 훔치느라 바쁘다.
극의 주제가 담긴 곡 ‘살아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은 공연 중 3번이나 흘러나온다. 특히 벽 속에 갇혀 살던 아버지가 40년 뒤 상전벽해가 된 세상에 첫 걸음을 뗄 때 흐르는 이곡은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어느덧 67세. 40년간 벽 속에 갇혀산 그가 사면을 받는 날. 아버지는 “이상해. 딱딱해. 튕겨버릴것 같아”라며 난생 처음 밟아보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두려움에 떤다. 그는 사위와 아내가 겨우 부축해서야 40년 만에 낯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햇빛을 한가득 맞으며 환한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중년은 물론 젊은 관객들도 공감하기 좋은 극이다. 극중 아버지는 벽 속에 갇혀 죽은 사람처럼 살다가도 딸의 결혼식에 입힐 웨딩드레스를 밤새 베로 짜서 완성하는 초인적인 존재다. 우리가 알던 ‘거대한 산과 같은 아버지’가 사실 자신의 인생을 벽 속에 묻어둔 가엾은 존재였구나, 자각이 들 때쯤 부모님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자녀들도 눈물을 쏟아낸다. ~ 9.25일까지. PMC대학로자유극장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사진=PMC프러덕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