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들의 작업에서 한국미술 미래를 본다..에르메스미술상
국내에도 미술상이 여럿 있지만 에르메스코리아(사장 전형선)가 주관하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은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에겐 ‘단비’같은 상(賞)이다. 미술시장에선 썩 내키지않는, 전위적인 작업일지라도 독창적이라면 얼마든지 수상후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3명(3팀)의 혁신적인 아티스트가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지난 9일 서울 신사동 메종에르메스 내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미술상 후보작가들의 출품작 전시가 개막됐다.

지난 2000년 제정돼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에르메스미술상은 그동안 장영혜, 김범, 박이소, 서도호, 박찬경, 구정아, 임민욱 등 쟁쟁한 작가들이 거쳐 갔고, 올해는 김상돈, 최원준, 파트타임스위트(PTS)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먼저 김상돈은 ‘솔베이지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조각, 사진, 비디오작업을 출품했다. 아름다운 선율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솔베이지의 노래’의 무대이자, 평화로운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꼽혔던 노르웨이에서 지난 달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테러가 발생했던 현실처럼, 그의 작품은 감상자를 모순적인 세계로 끌어들인다. 김상돈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삶의 작은 디테일을 대비시키며, 성과 속, 일상과 신화, 살아있는 생물과 공산품, 공동체와 개인 등 근대의 이분법적 구분에 의문을 던진다. 신발 깔창을 연결해 만든 화분과 타오르는 불을 시멘트로 형상화한 역기, 대걸레를 연결해 만든 삼족오 상(三足烏 像) 등은 현대인의 우아하지만 한편으론 더없이 통속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최원준(32)의 영상작품 ‘물레’ 또한 신선하다. 우리 주변의 핵심적인 비장소(non-place), 즉 존재하지만 실은 존재하지 않는 장소들을 특유의 드라이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작가는 이번에 한국의 대표적인 철공장지대인 문래동에 주목했다. 문래동 철상가 2층에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옮겨오며 거친 쇳덩이와, 말랑한 꿈의 산실인 예술이 공존하는 현실을 45분짜리 필름에 담았다. ‘착시’를 통해 현실의 여러 요소를 재구성하는 일종의 모큐멘터리(mockumentary)인 작품은 5.16군사정변의 주 무대였던 문래공원의 벙커와 예술가의 지하작업실을 교차한다.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친 묘소, 더는 사용되지 않는 경부고속도로 옥천 터널 구간 등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장소를 촬영한 사진들도 출품했다.



이병재(29), 박재영(27), 이미연(33)으로 구성된 프로젝트그룹 ‘파트타임 스위트’는 대학을 졸업하고 척박한 현실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현실을 드러낸 ‘포스트-제목없음’을 출품했다.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집에서 붉은 털실로 짠 조각을 이어 붙여 둥근 기둥처럼 늘어뜨린 ‘파도’와 13평짜리 전시 공간을 댄스클럽으로 꾸민 ‘13평 클럽’을 선보이고 있다. 또 4시간 동안 시멘트를 밟아대는 퍼포먼스를 촬영하고 이를 클럽 음악에 맞춰 뮤직비디오로 만든 영상작품 ‘행진 댄스’도 선보인다. 예술과 노동 사이를 오가며 결핍과 모순을 경험하는 작가들의 발언은 그러나 어둡지만은 않다. 전시는 10월4일까지. 최종수상자는 9월 22일 판가름난다. 02)544-7722. <사진제공=에르메스 코리아>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