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공연중인 김성녀의 1인 뮤지컬 ‘벽속의 요정’은 중년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관람하기 좋은 공연이다. 1인 32역을 맡은 김성녀가 2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을 펼친다. 2005년 초연된 뒤, 매년 앙코르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을 울리고 웃긴 작품으로 전쟁 때문에 40년간 벽 속에 숨어 살며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아버지, 벽 속에 사는 요정이 아버지라는 점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딸의 모습을 통해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그려낸다. 스페인 내전을 토대로 한 후쿠다 요시유키의 원작을 극작가 배삼식이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재구성했다. 연출은 김성녀의 남편인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맡아 의미를 더했다.
김성녀는 양 갈래 머리를 한 소녀부터, 엄마, 아빠, 행인, 건달 등 혼자서 32역을 연기한다. 목소리 변주는 물론이고, 걸음걸이, 표정 등을 바꿔가며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 객석을 놀라게 만든다. 작품은 뮤지컬의 형식을 곁들였다. 서양식 뮤지컬 창법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은 김성녀표 한국적 창법에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재미와 감동의 배합도 적절하게 버무려졌다. 공연 내내 웃느라 정신 없던 관객들은 극의 말미로 갈수록, 눈물을 훔치느라 정신이 없다. 오는 9월 25일까지 PMC대학로자유극장에서 공연된다.
현대 감각으로 재탄생하는 고전 연극도 눈에 띤다. 명동예술극장은 9월 3일부터 독일의 스타연출가 다비드 뵈시를 초빙해 연극 ‘우어 파우스트(urfaust)’를 올린다. 다비드 뵈시는 독일 연극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로, 이론에 구애받지 않는 지적인 연출과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돋보이는 연출가다. ‘우어 파우스트’는 괴테가 25세 때 쓴 파우스트의 초고로, 다비드 뵈시는 캐스팅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 일일이 오디션을 거쳐 배우들을 선택했다. 한국 배우로는 정보석, 이남희, 정규수 등이 호흡을 맞추며, 무대ㆍ의상 디자인은 팔코 헤롤트가 영입됐다. 명동예술극장 측은 “이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기존 해외 연출가의 초청작품이 아닌 한국 배우들과 해외 연출가가 만드는 세계 초연작이라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배우 정보석은 파우스트 박사를 연기한다. 파우스트는 돈도 명예도 얻었지만 가슴이 텅 빈 남자로 세속적 안락함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한다. 정보석은 “흔히 생각하는 철학적이고 초인적인 파우스트와 달리, ‘위기의 중년 남자’ 파우스트로 색다른 해석이 더해진다”며 “중년 남성이 자기 회의에 빠져서 그걸 채울 수 있는 돌파구로 여인을 선택하지만 결국 공허함만 남게 된다는 내용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조민선기자@bonjod08>/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