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진의 ‘나나’(현대문학)는 우리 문학계보에서 좀 낯설다. 주변의 남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옴짝달싹 못하는 만드는 치명적 매력을 지닌 주인공의 이름을 꼽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 서하진의 나나가 이름을 올렸다.
“나나는 종이인형처럼 얄팍한 몸피를 가진 아이였다. 저토록 흰 얼굴이 있다니 싶을 만큼 맑은 피부. 아이답지 않은 검고 숱 많은 머리채. 그 눈동자에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는 듯 몽롱함이 담겨 있었다.”
세살 차, 의붓오빠 인영은 열세살에 나나에 사로잡혀 영혼을 저당잡히고 만다. 군대와 유학 등 도망치듯 떠나지만 한시도 어른거리는 이미지와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기까지라면 섬세한 한 남자의 운명적 사랑 정도겠지만 문제는 의붓아버지다. 실종된 인영의 아버지의 미스터리가 비망록을 통해 밝혀진다. 거기엔 윤리적이고 자존심 강한 지성인인 그가 나나의 위태로운 자장에 휩쓸리지 않으려 스스로 격리를 택한 유약한 인물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작가는 나나를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데까지 나아가진 않는다. 어린 시절, 평범한 사랑에 굶주린 아이의 사랑의 집착, 생존본능으로 돌리려 한다. 따라서 나나가 인영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남자에 맞서 대신 피를 흘리는 귀결은 느닷없지만 이해할 만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들에 흔들리지만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것도 그런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작가가 상정한 윤리의 틀이다. 가족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인형처럼 부리지만 돌연 구원의 여신으로 변한 나나, 병적일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남편과 자폐아들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지 않는 애란, 스스로 사라짐을 택한 의붓아버지의 모습에 안도해야 할까. 단지 그 시간이 유예돼 있을 뿐이라는데 작가의 시선이 있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