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고시생 사상 첫 男 추월…고시촌 신풍속도
통계시작 5년만에 역전 요구르트 대신 아메리카노
주변 식당가 풍경도 바뀌어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검은색 큰 배낭을 메고 뿔테 안경을 낀 남성. ‘고시생’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쉽게 연상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고정관념도 변해야 할 듯하다. 고시를 준비하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2006년 男 고시생 女 1.7배…5년 만에 역전=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청년층(15~29세) 비경제활동인구의 취업시험 준비 현황을 조사한 결과 ‘고시ㆍ전문직’ 분야를 준비한 고시생은 여자가 3만6000명으로 남자(3만1000명)보다 많았다. 고시를 준비하는 여자가 남자를 앞지른 것은 관련 통계를 조사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처음이다.
2006년에는 남자 고시생이 3만9000명으로 여자 고시생(2만3000명)보다 1만6000명 많았으나 2009년에는 남자(3만8000명)와 여자(3만7000명)가 비슷한 수준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남자(4만6000명)와 여자(4만명) 모두 4만명대를 기록했다.
취업준비 분야에서 ‘고시ㆍ전문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남자가 지난해 10.0%로 2006년의 14.0%보다 낮아졌으나, 여자는 2006년 8.9%에서 지난해 12.9%로 높아졌다.
▶달라진 고시촌 풍경=여자 고시생의 증가는 서울 신림동 등 주요 고시촌과 대학 내 고시반의 풍경도 바꿔놓고 있다.
우선 고시학원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여학생이다.
서울 신림동 A학원 관계자는 “여학생 비율이 최근 5년 동안 많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40명이 정원인 수업에 들어가보면 30명 가까이 여학생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여학생의 증가로 ‘고시생 패션’에도 변화가 생겼다. 남자가 주로 모여있던 과거 고시촌에서는 트레이닝복 등 편안한 차림에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하이힐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는 등 한껏 멋을 낸 여자 고시생도 자주 눈에 띈다.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현모(25ㆍ여) 씨는 “옷차림으로 ‘나는 고시생’이라 티낼 필요는 없지 않나. 또한 오히려 옷을 갖춰 입고 공부를 하면 긴장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식후 디저트 메뉴가 요구르트에서 아메리카노로 바뀐 것도 여자 고시생 증가의 한 단면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2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박모(27) 씨는 “남자끼리 있을 때는 학원 근처 식당에서 주는 요구르트면 충분하다. 그런데 여자 고시생과 밥을 같이 먹으면 근처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고 말했다.
고시 준비나 전문직 취업을 위한 스터디 모임에서도 여자 비율이 높은 것은 이미 몇 년째 이어지는 현상이다. 심지어 남자 스터디원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도 왕왕 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허모(26ㆍ여) 씨는 “현재 스터디를 두 개 하고 있는데 한 스터디는 여자들만 있고, 또 다른 스터디는 전체 6명 중 남자가 2명 뿐이다. 남자 스터디원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인터넷 카페에서도 남자 스터디원만 뽑는다는 모집 글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