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200만원대 소품 그림 왜 인기?
오랜 불황으로 침체에 빠져 있던 국내 미술 시장에서 소품전이 ‘특수’로 부상 중이다. 화랑이며 기획사들은 너도나도 작은 그림전을 열며 미술애호가들을 끌어들이기 바쁘다. 특히 인사동은 불볕더위와 폭우에도 소품 그림전을 찾는 애호가들로 연일 북적대고 있다. 미술팬에게 큰 부담 없이 미술품을 구입하게 하면서 침체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장기적으론 미술 시장의 중추적 컬렉터로 자리 잡게 하려는 ‘중저가 판매 전략’이 주효하고 있는 것.
지난 5월 노화랑이 유명 작가 12명의 작은 그림 120점을 200만원 균일가에 판매한 ‘작은 그림 큰 마음’전이 거의 매진된 데 이어 한국미술센터(관장 이일영) 주관으로 갤러리이즈 4개층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한민국 작은 그림 미술제’도 성시를 이루고 있다. 오는 8월 2일까지 계속될 이 미술제는 한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원로ㆍ중견ㆍ신예 200명의 작품 500점이 나와 각기 다른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음미하며 선택할 수 있어 인기다.
특히 권옥연, 오승우, 이종상 등 예술원 회원과 송영방, 김구림, 황영성, 이두식, 오용길, 구자승, 한운성, 김춘옥, 주태석, 이희중, 황주리, 김재학, 임효, 정종미, 이종구, 반미령, 이이남 등 쟁쟁한 작가들의 근작및 신작이 다수 포함된 것도 컬렉터들의 발길을 불러모으게 한 요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작품값이 100만~300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것이 성황의 요체다. 특별전을 기획한 이일영 관장은 “비록 소품이긴 하나 유명 작가의 신작을 대거 접할 수 있어 반응이 매우 좋다”며 “작가들에게 추가 작품을 부탁했고, 전시 기간도 늘리고 싶지만 물량이 달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개막하자마자 100점이 경합 끝에 한꺼번에 팔리는 등 호응이 뜨거운데, 거실이나 사무실에 걸기 좋은, ‘똑 떨어지는 작품’이 역시 인기”라고 덧붙였다.
▶미술품, 감상의 시대→구입의 시대→소비하는 시대
이처럼 ‘명품 소품’은 미술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같은 작가의 같은 크기 소품이라 해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지금 바로 가져가겠다”며 현금을 들이미는 고객들이 줄을 잇는다. 이번 미술제에서도 노란 바탕에 인물을 짜임새 있게 대비시킨 황주리 작가의 ‘두 사람’(19×24㎝ㆍ200만원) 같은 작품은 경합이 매우 치열했다.
인사동 갤러리이즈.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인사동 갤러리이즈.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이처럼 소품 그림전의 판매가는 100만~200만원대가 대부분이어서 “미술품 수집, 100만원에서 시작하라”는 말도 나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이들 소품 중 훗날 높게 평가받을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보다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과 처음 인연을 맺는다’는 점에 의미를 두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작가들은 “소품이든, 대작이든 열정을 쏟는 건 마찬가지”라며 “소품도 대작과 같은 효과를 줘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손길이 많이 간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소품은 투자보다는 아트 재테크에 입문하기 위한 ‘첫 수순’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서 교수는 “2000년대 초만 해도 ‘앞으로 한국도 미술품 구입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시장이 이미 거쳐 간 길로, 향후에는 ‘미술품 소비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작품은 보다 엄밀한 검증을 통해 제대로 비용을 치르고 신중하게 골라야 하며, 100만~200만원대 소품의 경우 가벼운 마음으로 문화 소비 차원에서 접근하는 등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는 한국 미술 시장은 현재 최상위 일부 작가만 작품이 고가에 팔리는데, 문화 선진국으로 가려면 작품가 80만~300만원대의 중저가 시장을 활성화해 ‘안정된 삼각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초보 컬렉터, 이것만은 꼭 알아 두자
초기에는 자신의 한 달 월급 정도의 작품을 공략하는 게 적당하다. 너무 싼 작품은 가볍게 생각돼 안이해지고, 너무 고가의 작품은 부담이 크므로 월급 정도 작품이 제격이다.
성공적인 미술 투자를 위해선 ‘이거다’ 싶은 작품이 나섰을 때 용단을 내리는 배짱이 필요하다. 아트 재테크는 ‘타이밍’이 관건이다. 또 한 점이라도 직접 사고, 팔아 봐야 비로소 작품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꾸준한 노력과 학습을 통해 미술에 대한 안목도 길러야 한다. 아트 재테크도 알고 하는 사람과 모르고 하는 사람이 받을 성적표는 천양지차다.
투자를 위해 그림을 사고자 한다면 재판매(resale)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도록 표지나 포스터에 실린 작품은 향후 가격이 뛸 확률이 높다. 돈이 좀 모자란다고 어정쩡한 작품을 샀다간 그냥 집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끝날 공산이 크다. 또 너무 예쁘고 장식에만 치우친 작품, 유행을 좇는 작품은 경계하는 게 좋다. 이런 작품은 인테리어용으론 좋을지 몰라도 큰 투자 가치는 없다. 차라리 낯설고, 혁신적인 작품이 더 낫다.
미술품은 환금성이 낮은 투자 대상인 만큼 길게 보는 끈기도 필요하다. 1~2년 안에 치고 빠지는 단타성 투자, 즉 투기는 ‘필패’만 부른다는 게 아트 재테크의 불문율이다. 반면에 좋은 작품을 보유하고 장기적으로 기다릴 경우 가능성은 매우 크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질 좋은 미술품은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인 데다 한국도 1인당 GDP 3만달러 시대로 진입할 경우 미술관 수가 크게 늘고,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 4000억~45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미술 시장 또한 5년 내 1조원대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