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 그만 한다고 했어요?“ 피가 흐르고 눈두덩이가 부어오르는 것보다, 정말 이대로 경기가 중단되어버릴까봐, 나는 그게 더 겁이 났다. 시합은 아직 남아 있었고, 나는 그때까지 뒤지고 있었다.” p7
2010년 9월 챔피언 타이틀 4개가 걸린 시합에서 심판이 2번이나 경기를 중단시킨다. 그 때 심하게 부상을 입은 선수가 한 말이다. <할 수 있다, 믿는다, 괜찮다>(2011.다산책방)는 스물여섯에 WIBA. WIBF. GBU. WBF 4개 기구 통합 챔피언에 오르며 최초로 6개 기구 세계 챔피언이 된 김주희의 이야기다.
그녀의 아빠는 IMF때 실직했다. 여기다 당뇨에 치매 초기 증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만큼의 운동보다 아버지를 돌보는게 더 힘들었다.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을 나갔다. 가족 몰래 엄마를 만날 때면 6시간도 기다렸다. 1만원을 받기 위해서 학교 매장에서 빵을 팔았다. 10원짜리 하나도 아껴야 했다. 챔피언이 된 다음에도 비오는 날이면 마트에 가서 카트를 집어넣고 100원씩 모은다. 30분이면 몇천원을 모은다. 지금도 이렇게 번 돈은 그녀에게 소중하다.
그녀는 보통 사람보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빈혈이 있다. 그래서 운동중에도 툭 하면 쓰러졌다. 우울증에 걸려서 아예 바깥 출입을 못한 적도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이겼음에도 진 선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이처럼 여린 몸과 감수성을 가졌지만 그녀는 이것을 장애물로 보지 않았다. 끌어안고 약점은 강하게 강점은 더욱 강하게 키워 나갔다.
그녀에게 권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삶 그 자체였다. 그녀는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처절한 상황에서의 자기 자신을 지켜냈다. 왜 그렇게 처절하게 하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권투를 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렇게 물어봐주실래요?”
언니가 하는 권투도장에 따라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머리가 울리고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심장은 뜨거운 숨을 뱉어내느라 폭발할 것 같았다. 그 기분 후에 느껴지는 뻥 뚫린 듯한 마음의 평온함. 그녀가 권투에 빠진 이유다.
그녀는 시합전에 발톱이 3개가 빠지면 불안해 한다. 평소에는 8개씩 빠질 만큼 열심히 연습했는데 그만큼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하는 이유는 ‘인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잘한다는 ‘인정’이 고팠다. 배고파서 생긴 식탐보다 더 강했다. 지독하게 훈련해서 한계를 넘어서는 것. 이제 그만 쉬고 싶을 때 20퍼센트를 더하고 그녀 스스로 ‘참 잘했다’ 라고 칭찬한다.
어떤 의미에선 친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은 관장님, 언제나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준 언니와 함께 그녀가 챔피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부끄러워진다. 물론 그녀 말대로 그녀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녀보다 나은 환경임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더 좋은 여건에서도 꿈을 이루지 못한다. 이 책의 맨 뒤에 있는 비밀노트에 나와있는 말처럼 자립심이 강해지려면 가난하게 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듯 하다.
현재 삶이 힘들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얼굴에 피멍이 들어도 화장으로 가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떳떳하고, '난 이쁘니까' 라고 생각하며 허름한 트레이닝복에 낡은 운동화를 신고도 당당하게 로드워크를 나가는 그녀가 당신에게 힘을 줄 것이다. 앞으로 그녀의 앞날이 기대된다.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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