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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개도 자살을 할 수 있다?
익숙하고 낯익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알고 있는 것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재현한 소설에 익숙한 이들에게 소설가 안성호는 미지의 영역이다.
두번째 소설집 ‘누가 말렝을 죽였는가’(문학과 지성사)에서 그가 열어 보이는 세계는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기에 낯설고 초기 거부반응마저 일어날 수 있다.

기억을 먹고 자라는 검은 물고기, 마을 사람의 귀를 잘라내 숲에 묻어버리는 남자, 피를 먹고 자라는 칼, 칼의 피를 먹고 태어난 매미, 대추나무에 매달려 자살한 개….
마법적 리얼리즘이란 이름이 붙은 이런 설정을 소설, 허구니까 아무래도 좋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작가는 그게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왜? 사실이 아니란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개가 왜 자살을 못한다고 생각하나? 나무도 살기 싫으면 죽는 것이고, 하늘에 떠 있는 태양도 재미가 없으면 저쪽으로 지는 거야. 우리 기준으로 개를 판단하면 안되지.” “개가 어떻게 자살을 하나? 판단할 수 있는 머리가 없는데….” “개에게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대추나무에 걸린 개’)

작가는 “내 소설은 가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8편의 단편소설은 우리가 명백하다고 믿는 사실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가정에 답하는 진술인 셈이다.


무너져내린 허공 위 육교 계단을 걸어와 어깨를 부딪히는 남자(누가 말렝을 죽였는가)가 있고, 지하철 어둠 속에 사는 사람만한 쥐(쥐), 지느러미를 가진 아내(실종)도 있는 것이다. 도둑이 든 이후 가족에게 찾아온 검은 물고기가 가족과 사람의 기억을 먹으며 점점 커가기도 한다(검은 물고기의 밤).

작가는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물구나무 서서 보듯 이상한 세계를 일상처럼 그려낸다. 거꾸로 망막에 흔들리며 들어온 세계, 거기에 그물을 던져 건져올린 걸 작가는 그대로 담아 내놓는다. 비릿하고 차갑고 살아있음과 소멸의 경계에 서 있는 불안한 눈만이 커다랗게 부각된다.

벵쌍에게 어깨를 부딪친 후 알 수 없는 병을 앓다가 죽어간 말렝, 지하철 환풍구의 어둠에 깃들어 살다 결국 철로에서 발견된 인간 쥐, 탈출구 없는 답답한 현실을 욕조를 넓히고 스스로 물고기가 된 아내처럼 현실은 닫혀 있다. 거기에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이 담겨 있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현실의 불가능성을 관통해 대안적 세계를 제시하지만 이에 실패한 데 안성호 소설의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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