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리 극단이 만드는 연극은 소극장보다는 중극장, 대극장 연극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작은 규모의 연극을 만드는 경쟁력있는 단체들은 대학로에 가면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대극장 연극을 만들 수 있는 자금력이나 조직력을 두루 갖춘 단체는 거의 없다.
지난 10년간 ‘맘마미아!’ ‘아이다’ ‘렌트’ ‘시카고’ 등 대형 뮤지컬을 국내에 들여와 큰 성공을 거뒀다. 이 뮤지컬들에 처음 손을 댔을 때만 해도, 모두들 예산이 많이 투자되는 대형 무대 제작을 꺼렸다. 당시로선 대단한 모험이었다. 외국서 들어온 작품들의 파격적인 내용도 위험 요소였다. 성공을 낙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우려가 쏟아졌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모든 작품들은 항상 ‘시기상조라서 안된다’,’망한다’,’미친 짓이다’등 듣기 불편한 조언과 비판을 더 숱하게 들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특유의 괴짜 근성과 역발상이 빛을 봤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더 심한 반대에 부딪혔던 작품일수록 확률적으로도 더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숱한 모험을 통해 수많은 공연 노하우를 습득하고 선진 제작시스템도 익혔으며, 새로운 가치와 이윤를 창출할 수 있었다. 뮤지컬을 더 대중적인 장르로 확신시키는데도 일조했다.
얼마전 연극 ‘산불’을 국립극장의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고 했을 때도 같은 반응들이었다. ‘소극장에서 내내 해왔던 작품을 대극장에서 왜?’
하지만 ‘산불’은 영화, 오페라, 뮤지컬, 창극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될 정도로 원작의 완성도가 탁월하다. 한 작품 안에서 계절이 변하고 온 산을 삼킬 듯 불이 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작품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무대와 조명 등 무대 메커니즘이 숨막히게 전환되는 기발한 상상력의 연극을 대극장 무대에서 구현해보고 싶었다.
‘산불’은 내게 연극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故차범석 선생의 작품이었고, 지난 2007년에는 뮤지컬 ‘댄싱섀도우’로 재탄생시켰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다. 대형 창작 뮤지컬 ‘댄싱섀도우’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 무대에 올렸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어쩌면 ‘댄싱섀도우’의 아픔을 연극 ‘산불’로서 명예회복 하리라 벼르고 덤볐을지도 모른다.
‘산불’을 1500석 규모의 대극장에 올린 것은 의미있는 시도였다. 공연장에는 중, 장년층의 관객이 몰리며 중년 열풍을 만들어냈다. 좋은 배우들과 스태프가 참여하여 수준을 높였고, 객석은 궂은 장마에도 불구하고 매회 가득찼다. 고급 연극에 갈증을 느끼는 중, 장년층들에게 새로운 볼거리와 감동을 안겼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대극장 연극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고, 대형 연극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 값진 작업이었다.
우리 공연 환경이나 공연시장은 아직도 소극장 연극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 연극이 균등하게 공존할 때 건강한 공연시장이 형성되고 연극시장이 지속적으로 팽창할 것이라 믿는다. 때문에 앞으로도 사명감을 갖고 대단한 모험을 계속할 것이다. 이 모험들이 계속될 때 연극도 뮤지컬처럼 더욱 관객들에게 사랑받으며,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연극 ‘산불’로 큰 희망을 얻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ㆍ명지대학교 영화 뮤지컬 학부 전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