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의 김종영미술관(관장 최종태)은 순수한 선과 빛으로 참신한 작업을 선보여온 김신일을 초대해 ‘제3의 아름다움(美)’전을 마련했다. 전시부제인 ‘제3의 아름다움’은 작가가 우리 눈으론 볼 수 없는 ‘숨겨진 세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명명됐다. 현재 뉴욕에 머물며 작업 중인 김신일은 지난 10여년의 작업과 최근 시도한 미공개 신작을 고루 출품했다.
우선 압인드로잉이 여러 점 나왔다. 압인드로잉이란 종이를 도구로 눌러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부분으로 문자나 형상을 표현하는 기법. 드로잉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복시킨 채, 오로지 ‘선’과 ‘빛’으로 이뤄진 김신일의 작업은 가장 명징하고 순수한 형태의 드로잉을 보여준다.
‘문자’를 재기발랄하게 해체한 입체작품도 여럿 볼 수 있다. 알파벳 단어를 연결시킨 작품들은 글자를 붙여버려, 단어의 뜻을 모르게 만들었다. 의미로서의 문자보다, 형태로서의 문자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단단히 굳어져버린 ‘범주화’를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단어를 통해 서로를 구분짓고 가르는 것을 흔들어보고 싶었다. 언어 자체를 비튼 작업”이라고 밝혔다.
우리 주위의 평범한 사진의 이미지를 4000배로 확대해 이를 영상화시킨 ‘영상사진’도 나왔다. 낯익은 이미지 속에 꼭꼭 숨겨졌던 수많은 픽셀들이 드러나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운 작업이다.
작품들은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공(空)’의 의미를 강조한다. 김신일은 “우주와 인간이 ‘공’ ‘비움’에서 비롯됐는데, 현대인들은 한정된 시공간에 갇혀 과도한 행복을 추구한다. 작품을 통해 존재 간 경계를 풀고, 이기적으로 범주화된 사회를 ‘비움’으로 녹이고 싶었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말이다”고 말했다.
김신일은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미국의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 석사과정을 마쳤다. 밀라노, 뉴욕, 베를린, 애틀랜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현재 밀라노 리카르도 크레스피 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 중이다. 전시는 28일까지. (02)3217-6484.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