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이론에 온몸을 싣는 진정한 보수주의 논객이 없다. 없으니 아마도 우리는 만들어내야 하리라.”
변혁의 바람이 거세던 1990년 복거일은 ‘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란 글에서 이같이 썼다. 진보 운운해야 지식인 연(然)하던 시기에 보수 논객의 진정성이 우러나온 말이다.
기자 출신의 문화평론가인 조우석의 ‘나는 보수다’ 역시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저자는 ‘지식인은 모름지기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진보만이 곧고 바르다는 ‘리버럴 강박’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실과 실용에 발붙이지 못한 ‘리버럴 강박’의 뿌리로 ‘유교의 탈레반’ 사대부를 꼽는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역사의 발목을 잡은 데서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을 겹쳐 본 것이다. 바로 그 밑바닥에 자리 잡은 ‘근본주의 DNA’다.
한국 근대사를 부정하는 역사 허무주의, 반(反)기업정서, 과도한 이념분쟁 등 한국병 또한 ‘근본주의 DNA’탓으로 본다. 이런 저자의 비판은 진보를 겨냥하는 동시에 초보적인 방어에 그치고 마는 보수를 향해 있기도 하다.
대개 관습이 된 저항, 치우친 비판은 개악을 낳기 마련이다. 저자의 입장은 기울기 잡기다. “ (개혁이) 광신으로 흐르고 사회적 분노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잡아보려는 의도다.
어찌 보면 그의 스탠스는 다소 애매하다. 논리가 성긴 부분도 적잖다. 좌파와 리버럴리스트를 ‘진보 리버럴’로 묶어 비판한 점은 좀 혼란스럽다. 더불어 시장과 자율보다 ‘대기획자’로서의 국가와 통제를 강조한 점에서 ‘보수 리버럴’의 비판을 벗어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수 성향의 소수의견”은 좌(左)클릭이 유행이 된 한국의 문화지형도에 다양성을 더하는 문제작으로 읽힌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