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6.25전쟁에 개입한 결정적인 이유는 소련의 요청때문이었다”
군사전문가 허동욱 박사가 중국이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개입한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 내놓은 결과다.
중국이 군사동맹을 통해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한 역사는 오래다. 1340여년 전, 나(羅)ㆍ당(唐) 연합군이 한반도를 통일했으며, 임진왜란시엔 일본에 맞서 조(朝)ㆍ명(明) 연합군이 결성되기도 했다. 가깝게는 6ㆍ25 전쟁이 있다.
허 박사는 최근 펴낸 ‘중국의 한반도 군사개입전략’(북코리아)를 통해 중국이 한반도에 군사를 투입하는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 역사적 사례를 하나하나 따져 분석해나간다. 무엇보다 국가 안보, 자국 이익과 연결돼 있느냐다. 6ㆍ25 전쟁의 경우, 중국의 군사 개입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중국지도부는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한 뒤에는 인도차이나를 노릴 것이라고 믿었다. 또 한반도 전역이 미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갈 경우 미국은 타이완 점령을 기정사실화하리라고 봤다. 이 경우 중국은 전략적으로 타이완과 한반도 양면에서 포위돼 협공을 받게 됨으로써 중국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저자는 당시 한반도에 투입된 부대에 주목한다. 중국은 주변 국경지역 분쟁에 대비해 최정예 부대를 국방전략예비대로 편성해 신속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으며, 이 부대가 한반도에 1제대로 투입됐다. 국가 안보와 함께 국제정치적 유대 강화, 주변국 우위 확보라는 전략목표도 군사개입의 결정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한국전쟁의 경우에는 소련의 군사 개입 요청이었다고 저자는 본다. 당시 중국은 냉전 양극 체제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진영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유대강화가 무엇보다 시급했기때문이다.
1343년 전, 나ㆍ당 군사동맹과 419년 전, 조ㆍ명 연합방위전략 역시 국가안보와 이익이 우선시됐다. 당나라는 신라와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영토 팽창 전략’을 추진해 원산~대동강 선을 확보함으로써 잠재적 위협인 고구려를 멸망시켜 한반도를 직접 통치하려 했다.
당나라와 신라가 군사동맹을 체결한 것은 태종 때이지만 군사 개입에 들어간 것은 12년 후인 고종 때다. 나ㆍ당 연합군의 협공 전략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게 당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들었을 때 개입했다는 얘기다.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는 또 다른 사례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사대관계로 명나라를 위해 대마도나 여진을 정벌함으로써 연합방위전략을 돈독히 했지만 정작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출병하지 않았다. 오로지 대동강 방어선이 붕괴돼 자국 방위가 위급하다고 판단됐을 때 출병했다. 더욱이 침략자를 물리쳐 주겠다는 지원자가 조선통치권을 놓고 왜군과 협상까지 벌인다.
이런 역사적 사례가 주는 교훈은 천안함 피격 사건을 둘러싼 중국의 입장을 돌아보면 여전히 유효하다.이 책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군사 개입 전략 결정 요인과 결정 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관련한 전략도 귀 기울일 만하다. 북한의 급변 사태와 관련해 중국은 군사 개입을 할 확률이 크다는게 허 박사의 주장이다. 저자는 “중국의 북한 급변 사태 시 군사 개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결정 요인은 과거 베트남과 같이 중국에 적대적(혹은 친중적 성향이 아닌) 주변국을 압록강 너머에 두어야 할 가능성이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한반도 군사개입전략/허동욱 지음/북코리아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