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몰랐던 원효의 매력
대한민국 의무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름. 신라시대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존경받는 승려 혹은 한 나라의 공주와 혼인하고 자식까지 가졌던 한 파계승.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툭 떠오른 위인이 있을 테다. ‘원효’ 국사책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던 그가, 왠일인지 무대 위로 행차하셨다. 그것도 시장바닥에서 시비 붙어 도망가고, 기생집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등, 승려로서는 꽤나 기상천외한 모습을 하고 말이다. 물론 그가 막돼먹은 땡 중의 면모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과 함께 얻은 깨달음과 나병 환자가 먹었던 사과마저 서슴지 않고 베어 무는 그의 담대함은 우리가 알고 있던 ‘원효’의 모습 그대로다. 다만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쾌활하게 표현되었을 뿐.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한 위인의 허를 찌르는 태도와 말 한마디 한마디는 공연의 주된 웃음 포인트이자 묘미이다. 원효가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이었던가, 집에 돌아와 묵혀뒀던 역사책을 펼쳤다.
1000년이 지난 전설 속의 사랑
뮤지컬에서 사랑이야기가 빠지면, 어쩐지 허전하다. 뮤지컬 <원효> 역시 신라시대 최대의 스캔들로 일컬어지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가감 없이 그려냈다. 존경받는 승려 원효와 신라의 공주 요석. 사랑에 빠지기에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애틋하고 극적인 로맨스의 재료로 충분하다. 이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이들의 우연. 그리고 운명적 사랑은,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까지 졸이게 한다.
아찔한 두 사람의 밀당은 결국 원효가 요석 궁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 끝이 난다. 불도를 어긴 파계승, 욕망을 참지 못한 순간,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살겠다며 노래를 울부짖는 순간. 그 어떤 관객이 그들의 사랑을 불경하다고 하겠나.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실제 역사에서는 한 순간의 꿈, 혹은 삼일천하라고 부르곤 하는 찰나의 사랑이지만, <원효>에서 만큼은 그런 사소한 뒷얘기는 신경 쓰지 말자. 1400년 만에 부활한 전설 같은 사랑이야기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웅장함과 섬세함의 짜릿한 조화
앞쪽에서 ‘마음만으로 뮤지컬을 감상해 보자’고 너스레를 떨었으나, 무대와 의상에 관한 이야기는 빠뜨릴 수가 없겠다. <원효>가 공연된 장소는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우리금융아트홀(역도경기장). 무려 1200석 규모의 공연장은 뮤지컬 공연장 치고는 실로 거대한 규모이다. 거기에 더해 총 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하이테크 뮤지컬, 그 말만으로도 공연의 웅장함이 그려진다. LED와 디지털 라이트로 구현되는 황룡사와 장면 별로 변화하는 환상적이기까지 한 무대디자인은 처음부터 좌중의 시선을 압도한다. 그 중 원효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뒤,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의 무대디자인은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배우들의 의상도 절경이다. 총 천연색으로 치장한 입체적인 무대의상은 전통의복과 승려복이라는 한계를 벗어난 시각적 호사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공주의 의상에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펙터클 뮤지컬이란 이런 것이지.’ 투자대비 공연의 질에 반기를 들 마음은 전혀 없다. 청각적 부분에서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배우들의 말 그대로 소름 돋는 가창력은 12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울리고도 남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경음악 등의 사운드 효과가 너무 웅장한 나머지 종종 배우들의 노래를 덮어버렸고, 몇 몇 부분에서의 가사전달력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 정도. 하지만 이는 막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의 기술적인 결함일 뿐, 공연의 완성도는 우리를 경탄에 빠트리기에 충분하다.
공연정보
뮤지컬 <원효> (2011)
공연시간 130분
공연기간 4월 22일~6월 12일
장소 우리금융아트홀
출연 이지훈, 서지훈, 김아선, 선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