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6시 반, 서울시 서대문구 ‘홍대걷고싶은거리’ 한쪽에서는 2년 전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저는 힘없고 나약한 신인 연예인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남긴채 세상을 떠난 고(故) ‘장자연 사건’을 재현한 연극이 펼쳐진 것. 가해자 중 어느 누구 한 명 처벌받지 않은 상황에서, 연극은 장씨의 억울함을 시민의 힘으로 풀어주자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시민법정극’이라는 이름을 단 연극의 제목은 ‘분노의 목소리’.
출출한 저녁시간, 홍대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의혹으로만 남은 ‘장자연 사건’의 가해자들이 극중 법정에 세워지고 연극이 시작되면서 발길을 멈추는 시민들은 늘어만 갔다.
20명의 보라색 모자를 쓴 시민 법정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극은 시작됐다. “최고는 돈이다. 권력이다!”라는 남성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고(故) 장자연 역의 여성 ‘나심판’이 당당히 응수했다. “여성 연예인의 성상납은 반 인권적 만행입니다. 여성 연예인을 성 노리개화 하는 치명적인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어 시민배심원단의 판결이 이어졌다. 이들은 4명의 남성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미스터 에이전시’에겐 ‘태형(笞刑)이, ‘좋은오빠’에겐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서 평생 거주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피아노맨’과 ‘이중맨’에게는 바른 말을 하지 못한 대가로 평생 묵언수행을 하라고 명령했다. 시민 법정단이 ‘미스터 에이전시’를 몽둥이로 때리는 퍼포먼스가 이어지자 감정이 이입된 시민들은 “우~우~”라며 극 중 남성들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연극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른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가해자가 명확히 가려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도 “죽음으로 항거해도 코웃음 치는 세상이다. 권력형 성 착취를 범죄로 인식하고 강력히 대처해 고 장자연씨의 영혼을 달래야 한다”고 역설했다.
30여분간의 연극이 끝난 뒤 고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30초간의 묵념시간이 이어졌다. 매니지먼트 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도 동시에 진행됐다.
연극을 본 대학생 김현정(24ㆍ여)씨는 “잊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저 놀랍고 화가 난다”면서 조속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직장인 서기원(33)씨는 “같은 남자로서 느끼는 게 많다”면서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관련 법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유진 기자@hyjsound> hyjgo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