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갤러리서미 홍송원(58) 사장이 홍라희(66) 삼성 리움 관장에게 “밀린 그림값을 지불하라”는 소송을 내며 물고 넘어지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은 불과 얼마전까지도 미술계에서 최고의 밀월관계를 형성하며 ‘홍-홍 투톱’으로 불렸다. 홍 사장은 홍 관장의 해외 미술품 구매를 도맡아 처리한 것은 물론 가구 및 인테리어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깊숙이 챙겨온 최측근이다. 그러나 이번에 송사를 벌이는 최악의 관계로 번져 미술계에선 원인 분석이 한창이다.
해외 미술품 거래에 정통한 미술계 인사는 홍 사장이 ‘소송’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내든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눠 분석하고 있다. 우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용(외상)을 걸고 들여온 고가 미술품의 가격이 폭락하고 판로가 막히자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한 홍 사장이 “부도가 나게 생겼으니 반값에라도 급하게 사달라”며 홍 관장 측에 작품을 넘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이들 작품을 들여올 때의 인보이스(송장)와 큰 차액이 드러나며 문제가 되자 리움에 “돈을 달라”고 통첩했을 것이라는 것.
두 번째로는 미술시장에서 고가 작품의 경우 통상적으로 대금을 3, 4회로 나눠서 결제하는 예가 많아 이에 해당된다는 분석이다. 특히 펀드나 담보대출을 통해 자금을 만들어 미술품을 이리저리 돌려온 홍 사장의 경우 “일단 가져가 감상하고, 대금은 나중에 처리해달라”는 식의 불명확한 거래를 많이 했다는 것.
홍 사장이 2009년 8월~2010년 2월까지 불과 반 년간 14점(총 781억여원)이나 리움에 판매했다고 밝힌 것을 볼 때 이 같은 방식으로 판매했을 개연성이 크다.
이에 대해 리움 측은 “그동안 미술품 대금 지급과 관련해 문제된 적이 없었다”고 황당해하며 “소장이 오면 검토해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리움은 문제의 14점이 미술관 소장인지, 홍 관장 개인 컬렉션인지에 대해서도 ‘밝힐 수 없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
삼성이 이처럼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자 일각에선 홍 사장을 수사하며 삼성가 비자금이 또다시 발견돼 이를 사전 희석시키기 위한 소송이란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재벌가 및 상류층과 조용히 거래해온 서미가 ‘조용히 받아낼 수 있는 돈’을 떠들썩한 싸움까지 건 것은 최대 고객이었던 삼성과 막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어서 그 속내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될 전망이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