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탄생 200주년…19일·25일 연주회 갖는 백건우
화려했던 젊은 시절·외로웠던 노년기‘위로 3번 Db 장조’·‘로망스’등
1~2부통해 전·후기로 재해석
“음악은 기교아닌 한 인간 보여주는 것”
“리스트가 가진 여러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집시와 종교인. 전혀 다른 이미지지만, 리스트는 이처럼 전혀 다른 두 면이 공존하는 사람이었죠.”
피아니스트 백건우(65). 한 작곡가를 그처럼 학구적으로 이해하려는 연주자가 있을까. 대부분 피아니스트들이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섞어서 연주회를 열지만, 백건우는 한 번에 한 작곡가만 파고든다. 40년 전 라벨 전곡 연주 이후 리스트ㆍ프로코피예프ㆍ라흐마니노프 등을 거쳤고, 2007년 한국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을 1주일 만에 연주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프란츠 리스트다. 백건우는 리스트의 작품 15곡을 골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19일, 25일 공연한다.
▶리스트, 희대의 비르투오소에서 성직자로=리스트(1811~86)는 천재적인 테크닉의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의 인생만으로도 하나의 역사가 될 정도로 굴곡 많은 삶을 살다간 예술가였다. 그는 75년 일생에 걸쳐, 피아노라는 악기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스펙트럼의 곡을 써냈다. 하지만 그의 전기작이 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후기작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리스트는 대중들에게 화려한 기교로 무장한 희대의 비르투오소(기교적 연주자)로 각인된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뛰어난 쇼맨십으로 인정받았고, 당시 뭇 여성들은 지금의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듯 그의 공연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알고 보면 리스트가 비르투오소로 명성을 떨친 것은 7년 정도였고, 이후에는 첫사랑과의 실연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방황한 한 남자였다. 말년에는 속세와 연을 끊고 종교에 귀의해 이전 음악과 완전히 다른 곡을 썼다. 젊어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작품을 말년에는 교향시를 주로 작곡했다.
▶백건우, 리스트의 음악을 다시 쓰다=백건우는 이번 공연을 통해 리스트의 다채로운 인생과 음악을 보여준다. ‘결국 음악은 인간을 그리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이번 무대를 통해 리스트의 삶과 음악에 보다 본질적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이번 공연의 1부(19일)는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리스트의 음악을 모아서 들려준다. 작가 샤를 생트-뵈브의 영향을 받은 ‘위로 3번 Db 장조’, 프라이리그라트의 서정시 ‘오, 사랑이여’ 중 ‘야상곡-사랑의 꿈 제3번’ 등 총 8곡이 백건우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다. 특히 ‘2개의 전설’ ‘조성이 없는 바가텔’ 등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거의 연주가 안된 곡들이다.
백건우는 2부(25일)에서 리스트의 후기 작품과 소나타 b단조를 들려준다.
1970년대 파리, 런던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곡 전곡을 연주했던 백건우는 세계 클래식계에 신선한 화제를 몰고 온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리스트의 후기작이 거의 연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스트의 후기작은 과연 같은 사람이 쓴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작들과 색채를 달리한다. 속세를 떠난 듯 보이는 종교적인 작품에서 난해한 화성과 생략된 구성의 미래지향적인 곡까지 다채롭다.
백건우는 “리스트의 후기 작품에서는 외로운 노경이 느껴진다.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야지만, 리스트의 후기 작품들은 화려했던 명성의 뒤편에서 그가 얼마나 슬프고 외로웠는지, 조국인 헝가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건우는 리스트의 매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후기 작품을 들어 보라고 말한다. 예컨대 ‘슬픈 곤돌라 2번’과 ‘로망스’는 리스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만한 소품곡들이다. 그외에 그가 한국에서 초연하는 리스트의 중기 걸작 ‘스케르초와 행진곡’도 청중에게 공개된다.
2부 마지막 곡은 리스트의 유일한 소나타 ‘소나타 b단조’다. 이 곡은 형식과 내용의 결합, 종교와 세속의 충돌, 텍스트와 음향이 한 자리에서 융합되는 리스트가 남긴 최대의 문제작이다. 지금까지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도전했고 그때마다 흥미로운 해석의 결과물이 도출된 곡이기도 하다.
백건우는 20년 만에 리스트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소나타 b단조’는 절대적인 걸작품이죠. 다시 보니 역시 그때는 보지 못한 것들이 많이 발견되더라고요.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리스트 음악회에서 소나타를 빼놓는 건 말이 안됩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이번에도 ‘음악은 순간의 기교가 아닌, 한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예술가로서 소신을 펼쳐보인다. 일생을 다해, 한 작곡가의 인생을 차례로 탐구하고, 백건우식 해석을 통해 청중에게 들려주는 거장의 연주가 기대된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