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란 제목으로 책이 나오자 주위에 열에 여덟, 아홉은 시니컬했다. “작가가 무슨 백화점?” 그 중 한둘은 “그래 조경란이라면 딱이지” 라 했다.
백화점의 수많은 상품들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며 그들의 자랑과 뽐냄에 기죽지 않고 특징과 쓰임새를 꼭꼭 집어낼 줄 아는 작가를 찾는다면 단연 소설가 조경란이다. 그의 후각, 미각, 텍스처의 결을 파고드는 예리한 눈썰미를 알 만한 이들은 안다. 백화점 지하 1층에서 10층까지 인간 욕망의 대상들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사는 과정을 통해 사물과 세계, 사람과 내면의 잔무늬들을 그려낸 조경란의 문화에세이 ‘백화점’(톨)은 그런 면에서 인증샷 격이다.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갈까 백화점으로 갈까 망설임 끝에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망을 채우러 백화점 행을 감행하는 작가의 진짜 속내가 궁금했다.
어렸을 때 거의 매일 엄마를 따라 시장에 다녔다. 활기가 넘치는 시장 안에서도 나를 압도한 건 닭집이다. ‘시장의 사회사’라는 책을 구매한 게 신인작가 시절인 1996년인데, 괜찮은 작가가 되면 시장이란 주제로 글을 써보리라 생각했다. 백화점은 또 다른 형태의 도시의 시장 아닌가. 왜 나는 매번 백화점에 가는가. 나의 욕망과 사물에 대해 쓰고 싶었다.
-‘소비는 미덕이다’ ‘소비는 악이다’ 여전히 사회는 갈등한다. 그런데 구매는 정당한 노동을 한 사람에게 일종의 보상과 위로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실은 쇼핑하는 걸 좋아하면서 “나 쇼핑하는 거 좋아해요” 하고 말하는 걸 꺼린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고, 자기 수준에 맞는 걸 고르고 사는 즐거움은 노동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실연을 당하고 나서 나는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살던 집이 넘어가게 됐을 때 출판계약을 하고 나의 잇백을 구매했다. 그렇게 나를 위로해줘야 할 때가 있다. 물건을 사는 것도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한 방법이다.
-소비를 새로움의 경험, 창조와 연결시킨 것도 색다르다.
상품을 만나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나는 단순한 디자인, 네모난 것, 작은 것에 매료된다. 작고 얇은 종이조각 같은 에스프레소 티스픈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는 수천번 선을 긋는다고 한다. 구매에는 그런 걸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필요로 하는 것과 욕망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기우는 편인가.
필요로 하는 걸 구매하는 쪽이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그런 것 같다. 갖지 못한다고 불행한 건 아니다. 사물을 보는 것의 즐거움, 가치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갖지 못하더라도 욕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일주일에 세번 책을 주문한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일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다. 작가로서의 의무감으로 꼭 읽어야 할 책들도 주문하고 새 책이 올라올 때 ‘이건 내 거야’ 하는 것들이 있다. 또 좋아하는 작가들이 무슨 책을 쓰고 있나 찾아본다.
이 책은 1층 향수, 화장품코너에서 시작해 시계, 구두, 가방, 의자, 옷, 아웃도어 등으로 이어지는 상품의 층위 속에서 사물의 본질, 심리, 백화점의 역사, 미학, 쇼핑의 과학, 자전적 스토리 등을 아울러내며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가가 그동안 경험하고 일궈온 많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백화점’적이다.
‘백화점 예찬론자’인 작가는 이 책의 재판을 찍으면 살 걸 미리 점찍어 놓았다. 일리 에스프레소 티스픈 1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백화점 신용카드가 없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사진= 김명섭 기자 msi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