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중국미술관 초대전 이두식 교수 특별인터뷰
지금까지 4300여점 제작대부분 컬렉터 손에…
中작가 작품 한점당 수십억
완성도는 한국이 더 뛰어나
“2년 전 베이징 금일(今日)미술관 개인전 때도 중국인들의 반응이 뜨거웠는데 이번엔 더하네요. 국립미술관이라 그런가요? 여세를 몰아 후배들이 한국미술의 기치를 확실히 올려줬으면 합니다. 중국현대미술, 점당 수십억원씩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며 다양성은 우리가 낫거든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두식(64ㆍ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홍익대 교수가 중국 정부 초청으로 지난 11일 베이징의 국립중국미술관에서 개인전(20일까지)을 개막했다. 그를 현지에서 만났다.
-이 많은 관람객, 어디서 모여드는지 궁금하다.
▶나도 궁금하다. 미술관이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있곤 한다. 놀랄 일이다. 현대미술의 역사는 우리보다 짧지만 열정은 우리보다 더 강한 것 같다.
-화려한 원색으로 ‘한국적 추상화’를 그리는 당신은 한국 추상미술을 이끄는 대표작가로 꼽힌다. 중국에선 어떻게 평가하나.
▶강렬한 원색이 화면을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내 그림을 두고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추상미술의 뿌리가 동양에 있음을 보여준다’고들 평한다. 중국미술계에 큰 자극과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요즘 들어 국내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활동하는데.
▶지난 2003 베이징비엔날레에 참가했을 당시 외국인으론 최초로 베이징 중국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됐다. 그리곤 선양(瀋陽)의 루쉰(魯迅)미술대학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또 상하이 시가 ‘중국 내 베니스’로 육성 중인 청포지역 아틀리에를 10년간 무상으로 제공받기도 했다.
-왜 중국에서의 호응이 높은가?
▶세계 미술시장을 강타했던 중국적 팝아트며 인물화 열풍이 한풀 꺾이며 중국 화단에도 추상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오방색을 사용하는 데다 상형문자인 한자를 추상적으로 차용한 나의 ‘동양적 추상’이 중국인의 정서에 맞아떨어진 듯하다.(이두식의 그림은 추상이지만 마음 심(心), 사람 인(人), 생각 사(思)자 등이 상형문자처럼 들어가 있고 여성의 얼굴, 물고기도 부유해 한자를 서양의 액션페인팅처럼 구가했다는 평을 듣는다.)
-당신은 국내에서 가장 그림을 많이 그리고, 많이 판 작가로 유명하다.
▶아마 그럴 거다. 지금까지 약 4200점을 그렸고, 대부분 컬렉터의 손에 들어갔다. 내 그림값이 유명세에 비해 싼 것도 잘 팔리는 이유다. 후배들이 값 좀 올리라고 하지만 컬렉터 입장에서 보면 적정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소문이 자자했다던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다. 작가가 꿈이셨던 부친은 일본에서 사진학교를 나와 영주에서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아버지를 도와 사진원판 수정을 하며 표현력을 연마했는데 오늘날 큰 밑거름이 됐다. 가는 붓으로 미남미녀, 참 많이도 만들어냈다. 납작한 콧대를 오뚝하게 세우고, 얽은 얼굴 매끄럽게 매만지는 일엔 이골이 났다.(이후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 초상화 등 인물화 작업도 숱하게 했다.)
-당신도 신혼 초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인기작가 축에 끼지만 젊은 시절 정말 지지리도 고생 많았다. 삼각지에서 ‘이발소 그림’을 7년 넘게 그렸다면 믿겠는가? 신혼 초 어머니께서 (아버지 병간호를 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니 갓난 아들이 급성폐렴에 걸려 열이 펄펄 끓었다. 입원보증금(3만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손 빠르고 묘사력 좋은 화가’를 찾던 그림중개상을 만나 한 달 치 월급(7만원)을 선불로 받고 수출용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대학원 마칠 때까지 계속했다.
-대부분의 작가는 이발소 그림 그린 걸 쉬쉬하던데?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 ‘생계를 위한 일’이었기에 부끄럽지 않다. 낮엔 수출용(주로 일본지역) 그림을 그리고, 밤엔 ‘내 그림’을 그렸다. 끽해야 하루 서너시간 잤다. 1976년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당시의 ‘생의 기원’ 연작을 요즘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다.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한국 작가들 실력, 참 대단하다. 세련미에선 국제 수준이다. 그런데 너무 시류를 의식한다. 뚝심을 갖고, 끈질기게 ‘자기만의 세계’를 밀어붙여야 한다. 약삭 빠른 작가는 큰 작가가 될 수 없다. 투지를 길러야 한다.
베이징=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작가 이두식은=경북 영주 출신으로 홍익대 회화과와 대학원 졸업해 모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까지 전 세계에서 65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보관문화훈장(95년)을 수훈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중국미술관(베이징), 불가리아 국립미술관, 지미카터재단(미국) 등에 소장돼 있다. 또 이탈리아 로마의 Flaminio 지하철역에도 그가 제작한 8m 길이의 벽화(모자이크)가 설치돼 있다.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한국실업배구연맹회장 등 미술 외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