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은 왜’ 펴낸 작가 임종욱 씨
독립운동 개입·동경 생활 재구성철저한 고증 바탕 탄탄한 글쓰기 매력
“시인 이상에 대한 결벽주의 같은 게 우리 문단에 있는 것 같다. 이상이 그렇게까지 식민지 현실을 모른 채 지냈을까. 이상이 민족독립운동에 개입했다는 상상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이상의 끊어진 고리를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천재 시인 이상의 도쿄에서의 생애 마지막 6개월을 재구성한 가상 역사소설 ‘이상은 왜’(전2권ㆍ자음과모음)를 펴낸 소설가 임종욱(49·사진)은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했다는 확실한 신분이 있고, 폐결핵까지 앓았는데 한 달 넘게 구금됐다는 사실이 의문”이라며 이 소설은 “도쿄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1937년 4월 17일 일본 도쿄 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이상의 도쿄에서의 마지막 6개월은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다만 1936년 10월께 도쿄로 떠났으며, 한 달여 옥살이를 하다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정도다.
임 씨가 새롭게 조명한 이상은 흔히 식민지 현실과 동떨어진 모더니스트로 알려진 모습과 달리 독립운동에 개입한 현실참여적 시인으로 그려진다.
백범이 설립한 비밀암살단의 단원으로 천황 암살을 위해 도쿄에 잠입한 까마귀를 만나, 그의 부탁으로 암호가 적힌 시를 써서 한성으로 보내면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된다. 또 까마귀의 결정적 문서를 은닉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신경과민에 시달리는 이상의 예민한 성격 이면에 단호함 같은 면도 부각시켰다.
임 씨는 “이런 이상을 드러내는 데 좀 망설여지기도 했다”며“오차가 있더라도 새로운 것을 드러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문학 박사 출신으로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탄탄한 글쓰기를 해오고 있는 임 씨는 이상의 도쿄행도 좀 다른 시각에서 본다. 서울에서의 거듭된 사업 실패뿐 아니라 시 세계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도쿄로 떠났을 것으로 본다. 그가 살아돌아왔다면 모더니즘 세계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소설은 1937년 도쿄와 소설가 정문탁이 이상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도쿄로 가면서 벌어지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이상이 중심축이지만 다른 한편에는 일본의 얼굴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의구심도 짙게 깔려 있다.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야욕, 명성황후 살해사건에 가담한 인물로 이상이 세들어 산 하숙집의 주인 이시카와 시부로, 일본 관동군 장교 고히치로, 의문의 재일 한국인의 일본인 살해사건 등 다양한 인물군상과 사건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일본이다.
임 씨는 일본은 그대로인데, 우리는 일본이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변했다며 속을 내준다고 꼬집는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을 준 것은 일본인데 그 죄를 묻기보다 우리는 친일인사를 찾는다고 우리 치부를 드러내기에만 급급한 측면이 있다”며 “자기반성이 필요하지만 가학적이란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